어린 시절에 다닌 성당은 내게 성스럽고 기괴한 이미지의 박물관이었다. 가시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에 손발이 못 박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거대한 누군가를 매주 올려다본다는 게 나 같은 꼬맹이들에게 정서적 상흔을 1(하나)도 남기지 않았을 리 없을 거다. 본당 내벽을 둘러 그분의 고…
최근 토니 비스콘티 다음으로 접한 음악 어르신은 영국인 사이먼 레이먼드 씨(54)다. 그는 1980, 90년대 아름답고 몽환적인 팝을 구사한 밴드 콕토 트윈스의 멤버였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인디 음반사로 꼽히는 벨라 유니언(Bella Union)의 사장. 벨라 유니언은 플리트 폭…
17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시내 컨벤션센터 3층 볼룸 D. 전날 미셸 오바마에 이은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뮤직 페스티벌 두 번째 기조연설자로 토니 비스콘티(72)가 단상에 올랐다. 1969년 2집부터 2016년 유작 ‘Blackstar’까지 데이…
15일(현지 시간) 오후 6시, 섭씨 30도의 한낮을 선사한 태양의 위세가 잦아들 즈음.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시내 6번가에 긴 줄이 늘어섰다. 300m쯤 되는 구불구불한 줄에 선 백인, 흑인, 아시아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의 얼굴들. 15일 개막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오랜만이에요….’ 가끔은 스팸 메일 제목 하나에 가슴 한편이 저릿해진다. e메일 보관함을 열었더니 오늘은 7통의 ‘오랜만이에요’와 2통의 ‘실례합니다 메일 주소가 맞는지 모르겠는데…’가 도착해 있다. 발신인은 같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평생 들 나이를 20년 동안 …
난 왜 물이 무서울까. 그 축축하고 물컹한 덩어리 안에 절여져 아가미 없이 질식되던 끔찍한 기억. 그 때문일까. 빌 에번스와 짐 홀의 재즈 피아노-기타 듀오 앨범 ‘Undercurrent’(1962년) 표지(사진)는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눈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몸에 붙는 흰 …
‘…하우 두 유 시 더 월드? 얼마 전 만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케빈 컨에게 결례를 무릅쓰고 용기 내 물었다. 안경을 쓴 그의 시력이 어느 정도인가 궁금해서다. “아웃 오브 포커스. 대츠 더 월드 아이 시. 벗 굿 이너프(초점이 나간 사진 같아요. 나한테 세상은 그렇게 보여요. …
이번 그래미어워드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은 언제였을까. 리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의 닐 포트나우 회장은 늘 그렇듯 시상식 후반부에 정장 차림으로 나와 “음악인들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옳은 소리를 했다. 그때 이날의 ‘거인’이 나타났다. 조이 알렉산…
이건 비밀이다. 기자가 되기 전엔 한 번도 기자가 되고 싶은 적이 없었다는 것. 취업할 무렵에 만난 면접관들, 그러니까 몇몇 언론사 임원 분들께는 무척 죄송한 일이다. 기자가 되고 나서야 기자가 조금 좋아졌다. 어릴 때 본 미국 TV시리즈 ‘환상 특급(The Twilight Zon…
‘…너무도 순수하게 들리는 나머지 초짜 기자 지미 올슨이 재즈 가수로라도 데뷔한 것 같다.’ 음반 리뷰 사이트 올뮤직닷컴의 스튜어트 메이슨이 트럼페터 쳇 베이커(1929∼1988)의 보컬 데뷔작 ‘Chet Baker Sings’(1956년) 앨범에 대해 쓴 평의 일부다. 지미 올슨…
“…오늘 낮에 서가대에 가보려고 했었는데 못 가서 ㅎㅎ.” 열흘 전 오후 5시쯤. 가요기획사 관계자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서가대…. 서가대라…. 눈앞이 하얘졌다. 0.5초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따 홍대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서가대면… 서강대의 오타겠지…
지상 관제소, 응답하라. 여기는 톰 소령이다. 화성에도 삶이 있냐고? 생명체라…. 오… 귀여운 사람들. 모든 젊은이들이여, 그건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에게나 물어볼 것. 사람들이 스타를 왜 스타라 부르는지 아나. 그건 그들이 실제로 별이기 때문이지. 명…
“전 아직 휴대전화에서 김광석 번호 안 지웠어요. 전화하면 받을 것 같아서요.” 6일 밤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 무대에 선 가수 한동준은 취한 듯했고 “사후세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여기 있다 생각한다. 공연하면 (그가) 늘 여기 와 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했지…
미국엔 ‘빅 이어(Big year)’라는 비공식 경기가 있다. 매년 첫날부터 12월 31일까지 개인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새를 관찰하느냐를 겨루는 게임. 365일간 700종 이상은 봐야 우승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전역의 버더(birder·새 관찰자)들은 올해도 각자 긴장 속에 …
2016년 1월 3일 일요일 흐림. 빅 이어. #190 Coldplay ‘Viva la Vida’(2008년) 미국엔 ‘빅 이어(Big year)’라는 비공식 경기가 있다. 매년 첫날부터 12월 31일까지 개인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새를 관찰하느냐를 겨루는 게임. 365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