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한 방송국에서 도난 사건이 있었다. 한 PD가 사내에서 사원증을 잃어버렸는데 그 사원증으로 누군가가 방송국 내 자료실에서 자료를 대출한 기록이 드러나면서 단순 분실 사고로 잊힐 수 있었던 일이 커졌다. 절도범이 PD의 사원증으로 대출한 건 CD 몇 장. 그중 다수가…
헤드폰은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나보다 기계나 자동차를 20배 더 잘 아는 대다수 남자라면 코웃음 칠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다. 영화 ‘허니와 클로버’를 기억한다. 미술학도 아오이 유가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자기 몸의 다섯 배쯤 되는 캔버스에 유화를 그…
‘청수합창단(淸水合唱團).’ 한국수자원공사의 사내 합창단 이름이 아니다. ‘전광교향악악단(電光交響樂樂團)’.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오케스트라 동아리 명칭이 아니다. 전자는 ‘Proud Mary’로 잘 알려진 미국 밴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 후자는 ‘Last Train…
아무리 봐도 영화 ‘다크 나이트’(2008년)의 조커와 ‘크로우’(1994년)의 에릭 드레이븐은 닮았다. 배우도 그렇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1979∼2008)는 영화 개봉 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드레이븐 역의 브랜던 리(1965∼1993)는 영화 촬영 중 소품용 권총에…
27일 오후 7시 40분. 500명이 들어왔는데 객석은 꽉 찼다. 객석이라니. 무대 아래가 더 맞는 말일 거다. 손목 스냅만으로 물병을 던져도 바로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맞힐 것 같았으니까. 은빛 보석들과 ‘E.J.’란 약자를 새긴 푸른 재킷을 입은 그 사람. 심리적 거리야 바다…
성공한 오타쿠들에겐 특징이 있다. 지독한 오타쿠라는 거다. 며칠 전, 대학 후배 S에게서 청첩장을 받았다. 찜닭을 나누며 신랑 만난 얘길 들었다. S는 몇 년 전 어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클래식·공연 동호회 방을 개설했다. 그 동호회 회원은 이제 350명에 이른다. S는 …
빨강과 금빛으로 장식된 2000석짜리 점잖은 콘서트홀, 격렬한 프로레슬링이나 농구 경기가 열릴 법한 뜨거운 1만 석짜리 공연장이나 야구 경기의 성지인 5만 석짜리 돔 구장, 무대에 올림픽 신전과 맞먹는 경외의 오라를 드리워줄 9만 석짜리 스타디움…. 세계 순회공연 규모도 가지가지다…
프로이트가 쓴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꿈은 현실의 반영’이란 말엔 어쩐지 믿음이 간다. 꿈이란 게 파문이 인 잠재의식의 웅덩이에 비친 복잡한 현실의 자화상이라면, 아이들의 공상은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논리 세계를 비춘 거울 아닐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눈…
사운드 디자이너를 꿈꾼 적 있다. ‘패션 감각은 별로니까 사운드로라도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위대한 선율을 쓰는 음악가가 될 자신이 없으니까 그래도 좀 있어 보이는 사운드 디자이너…’란 생각도 솔직히 있었다. 그때 브라질 음악가 아몽 토빙(Amon Tobin)에 푹 빠져서다…
9월엔 그린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10월엔 배리 매닐로의 ‘When October Goes’를 한 번쯤은 듣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가 있다. 그는 곧 건스엔로지스의 ‘November Rain’을 들으면서 “또 한 해가 갔어”, 한숨…
남자: “…오늘 그녀를 만났습니다.” 직원: “…다신 만나지 말라고 부탁했나요?” 남자: “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한다더군요.” 직원: “말투는?” 남자: “자신 있는 말투. 마치… 새빨간 루비처럼 말이죠.” 선문답을 주고받은 뒤, 직원은 따분한 표정으로 남자에…
‘hipster¹ n. 1. 최신 정보통, 박식한 사람 2. 유행을 좇는 사람….’ ‘힙스터’의 사전적 정의다. 지난주 술자리에서 지인들과 ‘힙왕’(힙스터 왕)의 조건을 토론했다. 서울 구도심의 무너질 듯한 건물에 숨은 1980년대식 술집이 요즘 가장 ‘힙’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개미굴 같은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을 부단히도 오가면서 난 한국에서라면 신체기관처럼 붙이고 다녔을 이어폰을 거의 귀에 꽂지 않았다. 파리의 청각 세계를 느끼고 싶어서? 아니. 소매치기가 많다니 겁나서. 귀라도 열어둬야 안 당하지. 지갑을 노리는 손길이 없다는 안도감이 든 뒤 비로소 …
17일 밤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스포르’의 돔 공연장에서 샹송의 살아있는 전설, 샤를 아즈나부르의 공연을 봤다. 올해 91세. 음악 한 지 70년 넘은 그는 에디트 피아프의 눈에 띄어 스타가 됐다. 아름다운 노랫말과 악곡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 가수 겸 작곡가는 말런 브랜도…
‘조그만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사람들을 보네/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새까만 동전 두 개만큼의 자유를 가지고/2분 30초 동안의 구원을 바라고 있네.’(동물원 ‘유리로 만든 배’) 그건 이맘때였고 경기 포천의 초가을은 서울보다 좀더 쌀쌀했을 것이다. 이제 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