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건 기자 경력 초기에 내게 자긍심을 적잖이 가져다 준 일이자 박봉을 견디게 해준 자양강장제였다. 돈 많이 버는 회사에 들어간 후배, 직업명이 ‘-사’로 끝나는 잘나가는 대학 동기도 날 만나면 이런 질문을 던졌으니까, 애달픈 눈빛으로. “○○○○ 만났다며…
다섯 살 무렵이었나.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빠져든 서양 미남은 예수님이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긴 머릿결, 사내답게 짙은 수염,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이목구비. 집이나 성당에 걸린 그림 속 그는 그 미모만으로도 숭배 받아 마땅해 보였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제59회 …
‘찰칵!’ 밤의 절정은 애석하게도 두 거장이 나란히 등장한 첫 순간의 시각적 충격에서 끝났다. 역사적이었지만 역사박물관에서 새 역사가 탄생하진 않았다. 23일 밤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찾은 두 피아노 거장 칙 코리아, 허비 행콕의 듀오 무대. 그랜드피아노 두 대 사이에서 기대했던 열띤…
미국 일리노이 주에 위치한 쿡 카운티 제일은 미국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교도소다. 알 카포네, 존 웨인 게이시가 수감된 곳. 뮤지컬과 영화 ‘시카고’의 배경. 며칠 전 별세한 ‘블루스의 왕’ 비비 킹(1925∼2015)의 걸작 실황 음반을 꼽자면 ‘라이브 앳 더 리걸(Live at…
“Funk는 ‘훵크’로 통일하면 안 될까?”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 짧은 글 하나 때문에 얼마 전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들 사이에 격론이 오갔다. 타이어가 펑크 나는 일보다 훨씬 자주 ‘펑크’란 단어와 맞닥뜨려야 하는 음악 필자 친구들이다. 음악 장르로서 펑크(punk)…
1∼3일 처음 내한한 팝의 전설 폴 매카트니는 어디에 묵었을까. S호텔도, H호텔도, I호텔도 아닌, R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었다. 매카트니가 “숙소는 반드시 공연장(잠실종합운동장)과 가까우면서 발코니가 있는 호텔로 잡아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공연 관계자는 “전 세계의 …
몇 년 전 처음 만난 영국의 밤은 파랬다. “어학연수 왔다 진짜 우울증 걸려 돌아간 애들 많다”는 말이 예사소리로 안 들렸다. TV를 틀었다. 내일의 날씨는 ‘맑음/비’였다. 예보 화면 속 런던 위에 해와 우산이 나란히…. “여긴 저 예보가 다반사”란 A의 설명이 잘 이해 안 됐다. …
삶의 모든 순간에 음악이 함께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야속하다. 죽음의 순간에 어떤 음악을 듣게 될까까지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제부턴지 침상에 누워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는 장면이 반복해 떠오른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것이든 쳇 베이커의 것이든 서브모션 오케스트라의…
팝 역사의 괴수대백과사전을 저술하자면 아이슬란드 싱어송라이터 비외르크(뷔욕·50) 앞에 별 다섯 개쯤 붙이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외계 요정 같다. 레이디 가가, 데이비드 보위, 메릴린 맨슨의 기이한 콘셉트가 작위적이고, 여성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깜찍한 의상에 비현실…
금요일 밤, 토이 콘서트엘 혼자 다녀왔다. 이적, 김연우, 김동률, 윤종신, 성시경을 비롯한 여러 객원가수가 지원한 무대는 화려했다. “나오시는 가수들이 CD랑 똑같아요. …왜 이걸 공연장에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달리는 가창력을 반어법으로 자학하며 눙친 유희열의…
매년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뮤직 페스티벌 기간이면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은 믿을 수 없이 거대한 음악 도시가 된다. 이 행사가 세계적인 음악 박람회로 발돋움하는 데는 도심에 자리한 거의 모든 점포가 일주일간 공연장이 되는 대변신이 한몫했다. 춤추는 나이트클럽은 물론이고 레스…
캐나다 록 밴드 러시의 노래 ‘2112’(1976년)는 음악판 ‘1984’(조지 오웰)다. SF영화처럼 스토리를 갖고 전개되는 이 20분 33초짜리 대곡은 ‘시링크스(Syrinx) 사원의 사제들’이라고 불리는 소수의 지성에 의해 출판, 음악, 미술이 엄격히 통제되는 2112년 미래 사…
때로 음악을 집중해 듣는 행위는 엑소 멤버 10명의 화려한 군무를 담은 풀숏 영상을 매직아이 책 들여다보듯 멍한 눈으로 응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드럼, 베이스기타, 기타, 건반, 보컬이 제각각 추는 춤은 2차원. 초점거리를 하나의 악기에 맞추고 다른 악기에도 귀를 열면 원근법이 적…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들과 일한 거?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었지…. 말도 마.” 재작년 3월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서 만난 미국 헤비메탈 가수 조 린 터너(64)는 1980년대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얘기는 그와 딥 퍼플, 레인보 활동을 함께한 리치 블랙모어(70)에…
2015년 3월 1일 일요일 흐림. 너에게 주문을 건다. #147 Screamin’ Jay Hawkins ‘I Put a Spell on You’(1956년)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재밌지도, 심지어 야하지도 않다고 풍문으로 다 들었소. 그래서 안 봤소. 이 영화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