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과 기대/블랙홀과 계시!’ 이런 문구를 어른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반복해 외친다. 때 아닌 휴거나 종말론을 설파하는 이색 종교집단의 필사적 집회가 아니고서야…. 근데 그건 17일 밤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 쓴 문구…
“선생님…, 무서워요….” 그날 밤, 2층 쪽에서 분명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곳, 바로 내부 계단 쪽 말이다. 계단참 벽에 걸린 ‘눈밭의 예수’ 사진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괜찮아. 아무 소리도 안 나잖아. 자, 다시 쳐 …
M이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그녀는 미성년이었다. 첨엔 낯설었는지 큰 눈만 반짝이며 어리둥절해하던 M은 곧 활기찬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낮엔 한쪽에 웅크리고 잠만 자다 어둠이 내리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M의 끝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불면의 밤이 시작됐다.…
지난 주말 경기 안산시 대부도에서 열린 안산밸리 록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거긴 안개의 섬이었다. 축제 첫날 초저녁부터 자욱하게 내려앉은 그것은 드넓은 대지를 울리는 음악에 희뿌연 장막이 돼줬다. 올해 낸 3집 표지에 안개에 포박당한 뉴욕의 마천루 사진을 내걸었던 미국 밴드 뱀파이어…
어제 오후, 4년 4개월 만에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 갔다. 김창기의 2집 발매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김창기는 고 김광석(1964∼1996)도 속했던 그룹 동물원 출신. 2000년 솔로 1집을 낸 뒤 최근 13년 만에 2집 ‘내 머리 속의 가시’를 냈다. 선한 인상의 그는 …
내게 일본 오키나와는 늘 부옇고 희미한 섬이었다. 10년 전쯤 본 이와이 슌지 감독의 달콤쌉싸래한 청춘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때문이다. 주인공 유이치와 친구들이 신비로운 숲과 바닷가를 헤매는 중반부의 ‘오키나와 시퀀스’는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화면은 영국 밴드 큐어의 가장…
집안은 늘 무표정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얀 실험복에 하얀 마스크, 하얀 두건을 쓴 그들은 항상 분주하다. 내 침대, 옷장, 냉장고 위에 하얀 먼지가루를 얹는 일 따위에 종일 골몰한다. 내 눈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7월 7일 오후 11시 2분의 세상과 11시 3분의 세상을 다르게 …
지난 목요일, 대전 은행동이 아닌 서울 서교동에서 18년 만에 만난 대전 친구 S. 날렵했던 얼굴과 몸이 나이만큼 넉넉해진 너를 내가 먼저 알아보지 못해 미안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장에 특채돼 사회인으로 숨 가쁜 10년을 보낸 넌 얼마 전 퇴사하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영화 ‘맨 오브 스틸’을 봤다(어쩌면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겠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각본은 배트맨네 집에서 빌려온 ‘다크나이트적 딜레마’를 슈퍼맨 목에 걸어주며 철학 석사학위까지 얹으려 했지만, 마천루를 떡메 치듯 부수는 잭 스나이더(‘300’의 감독)의 무식한 액션 연속까지 덮…
장마라서 그런지 온몸이 끈적끈적하다. 마치 세상의 대기가 온통 R&B로 덮인 듯. 작은 방의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놓고 미국의 여성 R&B 가수 크리셋 미셸이 최근 낸 3년 만의 새 앨범 ‘베터’를 큰 소리로 재생한다. 물방울 같은 음표 더미가 귀에 달라붙는다. 미…
“만날 욕하고 징징대는 데 쓰는 에너지 중에 8분의 1만 음악에 쏟아 봐!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될걸!” 오뉴월 밭고랑 같은 이마 주름을 실룩대며 제시(이선 호크)가 욕을 퍼붓는 상대는 그 밭 위 언덕처럼 불룩하게 배 나온 중년의 셀린(쥘리 델피). 순정만화 주인공 같던 호크와 델피…
기마뉘엘 드 오망크리스토(39)와 토마 방갈테르(38)도 원래는 사람이었다. 파리의 두 젊은이는, 그들 주장에 따르면, 1999년 9월 9일 오전 9시 9분 컴퓨터 버그로 스튜디오 기자재가 폭발하는 사고를 당한 뒤 사이보그가 됐다. 1997년 데뷔작 ‘홈워크’를 낼 때만 해도 이 …
“난 겨울에 얼음을 팔고, 지옥에 불을 팔아. …우물에 물을 팔아.”(‘유 돈트 노’ 중) 수완 좋은 제이가 말했다. 개츠비? 그 제이 말고 래퍼. 제이가 두 명 있다. 제이 개츠비(본명 제임스 개츠)와 제이지(Jay-Z·본명 숀 코리 카터). 전자는 픽션, 후자는 진짜. 둘 …
“단연코,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이에요.”(대중음악평론가 M) 그러게, 이런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그들의 연주는, 어떤 한계를 설정하지 않은 채, 경험한 적 없는 음의 세계를 먼저 상상한 다음, 그걸 어떻게든 표현해내려고 노력해서 마침내 다다른 피땀 어린 경지 같았다. 19일 오…
이렇게 환한 날엔 햇살과 함께 아스팔트 위로 부서져 내리고 싶다. 남태평양 위라면 더 좋겠다. 다른 말로 하면, 일하기, 싫다. 지난 주말, 다섯 번의 꿈을 꿨다. 두 번은 잘 때, 세 번은 깨어 있을 때 그랬다. 영국의 3인조 컬트 밴드 타이거 릴리스는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