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그가 날 찾아온 건 며칠 전 밤이었다. 정확히는 1일 오전 3시 45분 일본 도쿄 P호텔 2815호실. 욕조에 있었다.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룸메이트인 후배의 외침이 욕실 문을 넘었다. “저, 옆방 좀 다녀올게요.” 경쾌하게 답했다. “그래요!” 쏟아지는 물에 벗은 몸을 맡긴…
얼마 전, 연극 ‘못생긴 남자’를 봤다. 제목대로 못생긴 남자가 난생 처음 자신의 못생김을 깨닫고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받아 잘생긴 남자로 거듭나 벌어지는 해프닝을 무게감 있게 다룬 작품이었다. 청소년기에 고민이 많았다. 형 친구들은 ‘고놈, 형들 닮아 잘생겼네’라고 했고, 친구들은 ‘…
때로 이별의 날은 예리하다. 피해자의 심장을 상상 못할 두께로 자르고 저며서 눈앞의 희망도, 온기도 빨갛게 질식시키고 만다. ‘오, 미리엄, 그 참 예쁜 이름이지. 네가 죽을 때까지 계속 (그 이름을) 불러줄게… 내가 네 목숨을 앗아갈 때 미소 지어줄게’(‘미리엄’ 중). 미국 여성…
스포츠의 세계란 오묘하다. 뛰어난 탄력의 흑인, 정교함을 갖춘 백인, 오밀조밀한 황인의 장점이 각각 달라서 두각을 나타내는 종목도 별개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10년 전, 황인인 나는 학과 노래 소모임 멤버였다. 지난주 ‘노트’에도 등장한 ‘천국 보컬’ Y 군이 리더였다. 나는 Y의 “…
5월은 가정의 달일 뿐 아니라 결혼의 달이기도 하다. 그렇다. 벚꽃 잎처럼 쏟아져 내리는 청첩장.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평소엔 신용카드에 밀려 등판 기회가 없던 5만 원권 1장이나 1만 원권 5장 같은 것들을 준비하고, 입기 싫은 정장을 꺼내 입은 뒤, 신랑 또는 신부에게 그…
창밖으로 오사카 성의 야경이 보인다. 동방신기 일본 투어 콘서트 취재차 온 이곳 오사카에 봄비가 거세다. 김포공항을 떠나 일본에 도착한 오후, 호텔에 여장을 푸는 둥 마는 둥 번화가 신사이바시(心齋橋)로 뛰쳐나갔다. 룸메이트로 배정된 A사 기자 B 선배(그도 싱글이다!)와 나의 무언가…
안녕, 노트. 오늘은 창가에 부서진 눈부신 먼지와 함께 편지 한 통을 네게 담아두고 싶어. 어젯밤 작은형에게 보낸 e메일이야. ‘1997년. 형도 알겠지만 그때 내 우상은 다임백 대럴(1966∼2004·미국 헤비메탈 밴드 ‘판테라’의 멤버)이었어. 그의 면도날 같은 기타 연주는 눈부…
2008년 8월 15일 저녁. 나는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음악 축제 ETP페스트를 보고 있었다. 그날의 헤드라이너인 메릴린 맨슨은 칼날 모양의 마이크를 들고 나왔고 성경을 상징하는 듯한 책을 불태워 무대 바닥에 던졌다. 객석에는 10대 청소년도 많았다.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주…
무브스 라이크 재거, 트러블 메이커, 그리고 휘파람. 4월 2일 목요일. 봄비. 트랙#3 - Andrew Bird ‘Oh No’ 어제 오후, 서울 마포역과 공덕역 사이 대로변에서 세게 넘어졌다. 신호등 바뀌기 전에 길을 건너려고 냅다 뛰다 발이 걸렸다. 많이 창피했다. 앞으로 철퍼덕 …
“우리,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 다 잊는 걸로 하자. 우린 친구잖아. 친한 친구, 제일 친한 친구.” 그해 가을이 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고작 맥주 한 병의 취기에 기대 어렵게 용기를 냈으며 맞은편에 앉은 그녀 ‘J’에게 고백했고 보기 좋게 차였다. J는 과 동기였다. 지금 돌…
3월 18일 일요일, 쌀쌀함. 인트로 나는 싱글이다. ‘지난 5, 6년간 누구보다 대중음악 공연장을 자주 찾았다’는 자부 뒤에 ‘이게 다 싱글이기 때문’이라는 씁쓸한 분석도 있다. 그래서 이건 ‘싱글 노트’다. ‘섹스 앤드 더 시티’보다 감각적이거나 ‘뱀파이어 다이어리’보다 자극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