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0일 화요일 흐림. 장미 정원. #278 The Cranberries ‘When You're Gone’ (1996년) “다음 주쯤 밥 한번 먹자.” “그래, 조만간 한번 보자.” 올 한 해 동안 또 얼마나 자주 이런 공수표를 날릴지 모르겠다. 광막한 공간을 오가는 …
2018년 2월 6일 화요일 맑음. 숲의 대성당. #277 J먉nsi ‘Go Do’(2010년) 입춘이 지났음에도 봄의 낯빛은 간데없다. 이쯤 되니 망상을 하기로 한다. 물에 얼마간 담가두면 몸집이 불어나는 공룡 장난감 하나를 생각해보기로. 봄은 지금 어딘가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
노래 속에 그려진 정경은 늘 낭만적이다. 화성과 멜로디의 행간에 눈이 오고 비가 내리며 때로 번개가 친다. 젖은 플랫폼 위에 선 두 사람 사이로 주황색 가로등이 놓이고 스산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곳은 듣는 이의 상상에만 존재한다.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영원한 순간. 이 말은 ‘기나긴 짧음’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어떤 순간은 마치 성화(聖畵)처럼 영원히 박제된다고 믿고 싶다. 해질 녘의 건물 옥상. 젊은 여성이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그것은 하늘 높이 올라간다. 비현실적인 보라색 하늘과 구름. 이 짧은 이야기를 다룬 휴대전…
‘고디바’란 단어를 초콜릿의 달콤함으로만 기억한다면 독일 메탈 밴드 헤븐섈번의 ‘Godiva’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면도날 폭우처럼 고막 위로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드럼, 전기기타의 질주. 그 위로 성난 보컬은 “고다이버(Godiva)! … 레이디 고다이버!” 하고 연방 절규…
매년 새해 첫 영화로 뭘 볼지, 첫 앨범으로는 뭘 들을지를 고민한다. 별생각 없이 고른 그해 첫 영화, 첫 음반이 공교롭게도 한 해의 출발점을 그럴듯하게 수놓아준 적이 여러 번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의도적으로 고르게 됐다. 올해는 고민이 무위였다. 1일 새벽, 그냥 K가…
재즈는 집중해서 들으면 전위예술, 흘려서 들으면 배경음악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1889∼1977)의 말을 비틀어봤다. 말 그대로 연말이다. 미분(微分)하면 고통의 순간 몇 개가 추출되는 나의 한 해도 멀리서 바라보니 그럭…
내겐 팻뿐이었다. 팻 분. 이 괴상한 서양 아저씨 이름이 꼬마 버전의 나에게 크리스마스에 관한 첫인상에 가까웠던 것이다. 12월이 오고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질 때쯤이면 어머니는 형에게 말씀하셨다. “크리스마스니까 우리도 팻 분 좀 들어보자.” 그러면 형은 집에 있는 전축의 턴…
나만 그런 걸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인가 해본 적 있다. 희생자는 다른 누구이거나 바로 나다.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옛 기사들을 뒤적여본다. 10년 전 오늘, 우리 신문엔 어떤 기사가 났을까. 20년 전 오늘은? 지금 보면 기사…
“페스티벌에서 만나 반한 사람과 이들의 공연에 가라. 키스쯤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다.”(NME) “누아르 드림팝(dreampop).”(가디언) 맥주, 바비큐, 블루스나 헤비메탈이 먼저 연상되는 미국 텍사스. 그곳 출신 밴드에 안개의 나라 영국 매체들마저 이런 평을 아낌없이 쏟아부…
7일 청와대 국빈만찬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은 음악은 ‘Hail to the Chief’였다. 대대로 미국 대통령의 입·퇴장에 쓰이는 곡. ‘미국 대통령 찬가’로도 번역된다. 그래서 ‘Hail to the Thief’가 떠올랐다.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2003년 앨범…
가끔 레코드점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이번엔 성배였다. 10대 때 날 처음 음악에 빠져들게 만든 바로 그 곡. 독일 헤비메탈 밴드 헬로윈의 ‘Dr. Stein’이 담긴 45회전 싱글 레코드를 찾았다. 내가 몇 학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이 자가용을 산 지 얼마 안…
새 연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긴장된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나 서리대의 연구팀이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다.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오이가 사실은….’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이상씩 마시면 오히려….’ 기존 상식을 뒤엎는 새로운 학설…
2일(현지 시간) 66세를 일기로 별세한 미국 로커 톰 페티에 열광해 본 적 별로 없다. 어떤 가수들은 그렇다. 닐 영, 브루스 스프링스틴, 밥 딜런 같은 이들. 본토에선 슈퍼스타이지만 한국에선 소수의 팬만 존재하는 음악가. 왜일까. 강력하고 인상적인 기타 리프가 고막을 비집고 들…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헤비메탈 팬을 흥분시킨 적 있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유럽 정상들을 백악관 만찬에 초청한 자리에서다.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에게 그는 이런 덕담을 건넸다. 이를테면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죠. 케이팝도 압니다. 김치도요’ 하는 식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