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연간의 문인 조태채(趙泰采)는 ‘노쇠함을 탄식하며(歎衰)’라는 시에서 ‘병든 치아 있은들 몇 개나 되겠는가? 시든 백발 나날이 빠지니 몇 가닥 남았나? 앉으면 늘 졸음이 쏟아져 잠 생각만 간절하고, 일어날 때 허리 짚고 아이쿠 소리를 지른다(病齒時存凡幾箇 衰毛日落許多莖 坐常垂首惟…
실학자로 알려져 있는 김육(金堉·1580∼1658)은 젊은 시절 광해군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가평의 잠곡(潛谷)이라는 곳에 들어가 직접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인지라 시골집이 변변했을 리 없습니다. 사방은 온통 눈으로 뒤덮이고 하늘은 찌뿌듯한 게 답답한 …
오늘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입니다. 의병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인으로도 명성이 높았던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이 작품은 대설에 잘 어울립니다. 이 시는 고기잡이배를 그린 그림에 붙인 것입니다. 원경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근경에는 모래톱의 갈대가 바람에 꺾여 …
해가 늦게 뜨는 이즈음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바깥은 떠들썩합니다. 풍로에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고 처마 밑에 요란하게 울어대는 참새 울음소리도 들립니다. 부지런한 늙은 아내가 세수하고 빗질하고 나가 아침상을 준비하는 소리도 들립니…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1768년 초겨울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때까지 한양을 벗어나 먼 곳을 나가본 적이 없던 그가 스물일곱 나이에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마음에 풍정이 일었겠지요. 황해도 연안에 들러 하루를 묵었습니다. 이때가 음력 10월 22일이었습니다…
쌀쌀한 날씨라 절로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당깁니다. 가끔은 고깃국이나 생선탕보다 그 흔했던 쌀뜨물로 끓인 뜨물국이 그립기도 합니다. 한시(漢詩)는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규상(李奎象·1727∼1799)이라는 문인의 시가 그러합니다. 쌀이 귀하여 콩을 섞어 밥을 짓고…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접어드니 하루하루 추워집니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습니다. 예전 선비들은 이럴 때 화로를 곁에 두고 차를 끓여 마셨습니다. 고려 말의 이숭인(李崇仁)은 “산속 조용한 방 안 밝은 창가에서 정갈한 탁자에 향을 피우고 스님과 차를 끓이면서 함께 시를 짓는 것이 제일 …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이라는 시인이 “새벽 거울에 고운 머리 센 것이 근심스러운데, 밤에 시를 읊조리다 보니 달빛이 차구나(曉鏡但愁雲빈改, 夜吟應覺月光寒)”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거울 보기가 무서우니 바로 날로 많아지는 흰 머리카락 때문입니다. 신라 말의…
감은 참 예쁩니다. 늦봄 속살 같은 빛깔을 드러내는 조그마한 꽃, 늦은 가을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잎은 참으로 곱습니다. 게다가 서리 맞아 붉게 익은 홍시는 맛까지 좋습니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李奎報·1168∼1241)도 홍시를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시골 사람이 홍시를 보내었기에(…
느지막이 귀가를 서두르다 마천루 위에 떠오른 둥근 달을 보노라면 오늘이 음력 며칠인지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음력 시월 보름입니다. 보름달도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시월의 보름달은 새벽녘에 보면 그 맑음이 뼈에 사무칩니다. 이 작품은 이행(李荇·1478∼1534)이 153…
정치는 요란하고 경제는 어려우며 세상 사람들 마음은 더욱 각박해져 갑니다.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갑니다. 이럴 때는 말 많은 사람이 아닌, 말 없는 푸른 산만 마주하고 싶습니다. “말없는 청산이요, 태없는 유수(流水)로다”라고 한 성혼(成渾)의 시조도 이런 마음에서…
돌아올 것을 기약하지 않고 길을 나서는 자가 진정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일 겁니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그러하였습니다. 안동김씨 명문의 일원이지만 벼슬보다 산수를 좋아하였기에 평생 여행을 즐겼습니다. 그의 여행벽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시작되었으니, 옛글을 읽다가 홀연 …
횡삭부시(橫(삭,소)賦詩)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조(曹操)와 조비(曹丕) 부자가 말을 타고 창을 비껴 쥔 채 시를 지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물이 전장에서 글을 짓는 호쾌함을 가리킵니다.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젊은 시절 반대파에 몰려 전라도 …
오늘은 소설(小雪)입니다. 날씨가 제법 차가워지고 첫눈이 내린다는 날입니다. 깨끗한 눈이 탐욕으로 더럽혀진 세상을 덮어주면 좋겠습니다.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맑은 시도 그러한 일을 해줍니다. 이 시는 그림 그리듯이 읽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눈이 내려 온 천지가 다 하야…
가을의 수확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김윤안(金允安· 1562∼1620)이라는 조선 중기의 문인은 이런 아름다운 삶을 시로 노래하였습니다. 밤송이가 터지자 붉은 밤이 쏟아질 듯합니다. 볼이 발갛게 익은 대추도 가지가 휠 만큼 열렸습니다. 장대를 가지고 밤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