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거사비(去思碑)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워낙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떠난 관리를 그리워하여 세운 비석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움이 지나쳐 눈물까지 흘린다 하여 ‘타루비(墮淚碑)’라고도 하였습니다. 백성이 진심으로 송덕비를 세워주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임기…
부산 사람이 아니라도 을숙도의 가을을 기억하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근대화의 충격을 받으면서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을숙도가 있는 낙동강 하구는 갈대밭이 있어 가을의 정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허훈(許薰·1836∼1907)이라는 경북 선산 출신의 선비가 있었…
시는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풍경도 담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무렵 우리 한시는 감각이 살아 있는 풍경화를 그린 것이 많아 시를 읽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이공무(李功懋)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본 풍경을 읊은 시도 그러합니다. 이공무는 18세기 뛰어난 학자요 문인이었던 이…
가을이 깊어갑니다. 곱던 단풍도 비바람에 떨어져 사방 산이 휑합니다. 단풍잎은 이제 생명을 다하였나 봅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 권근(權近)의 아우인 권우(權遇·1363∼1419)는 떨어진 나뭇잎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스산한 가을을 맑…
날씨가 제법 찹니다. 뜨끈한 만둣국이 생각납니다. 예전 선비들은 먹을거리를 선물로 많이 보냈습니다. 조선 초기 시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벗 김유(金紐)에게서 만두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고급스러운 붉은 찬합에 하얀 만두를 담고, 매실로 담근 간장, 계피와 생강을 찧어 담…
아직 볕이 좋을 때 짬을 내어 가족의 손을 잡고 들길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인생살이 무어라고 아등바등 삽니까? 명예와 권력, 부귀와 영화가 대수겠습니까? 17세기 문인인 오숙(吳숙·1592∼1634)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러면서 가족이 함께 산책하는 즐거움을 말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웬만한 분들은 외기까지 할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시가 좋을까요? ‘만리심(萬里心)’에 끌려 11세에 당나라로 유학한 최치원(崔致遠·857∼?)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풀이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나라에서 지…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조촐한 술자리를 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더욱 좋겠지요. 그런 자리에 이런 시를 한 편 읽었으면 합니다. 성로(成輅·1550∼1615)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이 있었습니다. 창녕 성씨 명문의 후손이었지만 벼슬을 옳게 하지 못했고 집…
사람들은 다리 힘을 기르려고 산에 오르지만, 산을 오르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도 하게 됩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함께 조선 전기 유학을 대표하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看山看水看人間世)”는 명언을 남겼습니…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이 오고 낙엽이 뒹구는 소리에 가을이 갑니다. 호젓한 암자 하나 바위를 등지고 서 있습니다. 그곳으로 고불고불 오솔길 하나 나 있습니다. 산속이라 벌써 찬바람이 매서워 오구나무 잎이 바삐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
세상에 책 읽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요? 19세기의 학자 임헌회(任憲晦·1811∼1876)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임헌회는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벼슬을 마다하고 공주 산골로 들어가 조용히 살고자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식이 열심히 책을 읽으면 세사(世事)의 고민을 잊을 수 …
아직 단풍이 곱고 국화가 아름답지만 가을의 풍경을 보노라면 왠지 쓸쓸해집니다. 사람이 그리운 게지요.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1547년 젊은 사림(士林) 노수신(盧守愼)은 전라도 진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565년 무렵 이 시를 지었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겠습니…
조선 전기 사림의 영수로 알려진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경상도 함양(咸陽)의 군수로 있던 1471년 가을 벗들과 지리산을 유람했습니다. 천왕봉을 오르는 도중 의탄 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540년도 더 지난 오늘날도 지리산 기슭에 두면 어울릴 듯한 풍…
벗이 멀리서 신발 한 켤레 보낸 것은내 뜰에 푸른 이끼 덮였음을 알아서겠지.그리워라, 작년 저물어가는 가을 절에서온 산 가득한 붉은 단풍잎을 밟고 다녔지.故人遙寄一雙來知我庭中有綠苔仍憶去年秋寺暮滿山紅葉踏穿回―윤결 ‘산승이 짚신을 보내주어서(山人寄鞋)’가을이 되면 왠지 사람이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