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사진)이 말년을 보낸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은 작은 암자처럼 고즈넉하다. 심우장에 오르는 좁은 비탈길은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어지럽고 지저분하다. 성북동에서도 가장 후미진 이 언덕배기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주민들의 심…
《 서울 명동은 항시 세일 중이다. 호화스러운 간판과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호객 소리가 요란하다. 1950년대 꿈과 낭만, 사랑과 열정의 공간이었던 명동은 가장 화려한 패션의 거리로 변했다. 명동예술극장 건너편으로 유네스코 회관을 지나 골목 모퉁이에 있었던 ‘청동(靑銅)다방’.…
《 ‘관촌수필’의 작가인 이문구(1941∼2003)가 글쓰기를 위해 기거했던 오두막은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10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이 집은 그대로 비어 있다. 이제는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다. 나는 동향의 문단 후배가 되어 몇 차례 이곳에서 이…
《 소설가 최정희 선생(1906∼1990)은 1952년 첫 수필집 ‘사랑의 이력’을 펴냈다. 6·25전쟁의 혼란이 한창이던 서울에서였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시절에 책을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었던 때였지만 화가 김환기가 표지 장정 그림을 맡았고 계몽사가 선뜻 출판했다. 소설가 김동…
《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생가는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에 남아있다. 한국 근대문인의 생가 가운데 그 단아한 초가집의 원형이 유일하게 그대로 보존돼있다. 가람은 이 집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보냈고, 노후에 이곳을 찾아 자족하며 시조를 …
《 프랑스의 여성 시인이자 화가인 마리 로랑생(1883∼1956). 로랑생은 조르주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등과 교유하면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에 일찍 접했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등과도 함께 어울리면서 프랑스 예술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시인 박인환(…
《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란민들은 “남으로” “남으로”를 외쳤다. 당시 부산은 인구 20만 명 정도의 도시였지만 전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인산인해의 불안하고 지친 풍경. 이 가운데는 문인들도 있었다. 피란민들은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땅의 끝,…
《 1945년 8월 16일 아침. 경기 양주(현 남양주) 진건면 사릉리에서 살던 춘원 이광수(1892∼1950)는 이날도 집 근처 사릉천변에 산보를 나갔다. 하지만 풍경이 예전과 달랐다. 개천가에서 일본 군인의 감독 아래 자갈을 파는 노역을 하던 근로보국대 대원들이 웬일인지 일을 하지…
《 매년 봄이 되면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 일대. 남해와 맞닿은 이 아름다운 어촌 마을엔 시인 윤동주(1917∼1945)와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의 인연이 깃든 정병욱의 생가가 남아 있다. 윤동주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 문학작품은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잉태되는 결실이다.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잊을 수 없는 공간과 만남들을 더듬어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는 개인과 시대의 문학세계라는, 강(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