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창에는 하얀 달빛이 가득하다. 밤을 지새워도 이 즐거움은 이어지리라. 신선로(神仙爐)가 있으니.’ 조선 전기 문신 나식(1498∼1546)의 문집 ‘장음정유고’의 시 ‘여우음화(與友飮話)’다. ‘벗과 더불어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뜻이다.…
“곽박이 강부(江賦)에서, ‘분어(분魚)는 꼬리는 돼지꼬리처럼 생겼으며 몸통은 부채와 같이 둥글다’고 했으니 이는 우리나라 홍어다. 두 마리가 쌍을 지어 다니며, 두 눈은 위쪽에 있고 입은 아래에 있다. ‘생김새가 둥근 소반과 같고 입은 배 밑에 있으며 꼬리 끝에는 독이 있다’고 했으…
비빔밥? 혼란스럽다. 비빔밥의 다른 이름은 ‘혼돈반(混沌飯)’이다. ‘혼돈스러운 밥’이다.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혼돈반’과 같이 만들어 내놓으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웠다.’ 조선 중기 문신 박동량(1569∼1635)…
다산 정약용의 ‘유천진암기(游天眞菴記)’ 일부다. 천진암에서 즐겁게 놀았던 이야기다. 다산은 조선조 최고의 경세가 중 하나이자, 근엄하기 이를 데 없는 실학자다. 그가 남긴 ‘땡땡이 기록’이다. 배경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의 개울가다. ‘정사년(1797년, 정조 21년) …
성종 10년(1479년) 12월, 창덕궁 선정전의 어전회의다. 도승지 김승경(1430∼1493)이 말한다. “만약 명나라 사신이 오게 된다면 반드시 3, 4월 무렵일 것입니다. 그들은 여름을 지나고 돌아갈 것입니다.” 성종이 대답한다. “어찌 그 정도이겠는가? 지난번에도 오이(瓜) 심…
그럴듯하지만 아리송하다. ‘수박의 한반도 전래’에 대한 이야기다. 교산 허균(1569∼1618)은 ‘성소부부고’에서 수박의 한반도 전래를 알린다. “수박은 고려 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 개성에 심었다. 연대를 따져보면 아마 홍호(洪皓)가 강남(江南)에 돌아왔을 때보다 먼저일 것이다.…
영조 48년(1772년) 9월 7일, 충청감사 송재경이 파직된다. 죄목은 ‘목맥가분(木麥加分)’이다(‘조선왕조실록’). ‘목맥’은 메밀이다. 메밀의 원래 이름은 교맥(蕎麥). ‘교맥은 숙맥(菽麥)이라고 하고, 화교(花蕎)라고도 한다. 세속에서는 목맥(木麥)이라 한다’고 했다(‘임하필기…
흔하다. 우리 땅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가난한 선비의 밥상, 술상에 흔하게 올랐다. 귀하다. 궁중의 제사상에도 오른다. 이른 봄, 가장 먼저 종묘에 천신한다. 부추 이야기다. 부추는 ‘구(구)’ ‘구(구)’ 혹은 ‘구채(구菜)’라고 불렀다. 다산 정약용(1762∼1836)…
황당선(荒唐船)은 황당(荒唐)하다. 당황(唐慌)스럽다. ‘당(唐)’은 중국이다. 황당선은 황당한 중국 배다. 한반도 해안에 와서 해산물을 약탈한다. 잠깐 사이 내륙으로 상륙한다. 방풍나물 등을 채취하고 민가의 채소, 곡식, 가축을 약탈한다. 아녀자를 희롱, 겁간하기도 한다. 황당하다.…
장어는 ‘만리(鰻려)’ 혹은 ‘만리어’다. 속명이 장어(長魚)다. 몸이 길다. 그래서 장어다.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만리는 장어다. 생긴 것은 뱀과 같다’고 했다. ‘해만리(海鰻려)’는 바다의 장어, 바닷장어 즉 뱀장어다. ‘큰놈은 길이가 1장(丈)에 이르며, 모양은…
한치윤(1765∼1814)의 ‘해동역사’에 상추의 역사가 등장한다. “고려국의 사신이 오면 수(隋)나라 사람들이 채소의 종자를 구하면서 대가를 몹시 후하게 주었다. 그래서 이름을 천금채(千金菜)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상추다. 살펴보건대, 와거(와거)는 지금 속명이 ‘부로’이다.”…
그들은 ‘달단족(달(단,달)族)’이다. 달단은 ‘타타르(TATAR)’다. 뜻도 재미있다. ‘단((단,달))’은 ‘부드러운 가죽’이다. 달단은 고기, 가죽 등을 잘 만지는, 북방의 수렵, 기마 민족이다. 중국이나 한반도 모두 이들의 침략, 약탈로 속을 썩인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
1794년(정조 18년) 3월, 황해도 강령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증인은 현장에 있었던 함조이. “임성채의 처와 제가 앉아서 물고기를 썰고 있는데 객상 오흥부가 들어와서, 임성채의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임성채의 처가 ‘석어(石魚)’를 던지…
‘(1777년) 7월 28일(음력) 밤에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 이르러 강용휘가 전흥문에게 3문의 돈을 주어 개장국(狗醬)을 함께 사 먹고 대궐 안으로 숨어 들어가 별감 강계창과 나인(內人) 월혜를 불러 귀에 대고 한참 동안 속삭였다.’(‘명의록’) ‘명의록’은 정조 암살미수 …
나는 밴댕이다. 사람들은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한다. 억울하다. 내가 속이 좁아서 잡으면 곧 죽는다고 말한다. 밴댕이를 잡는 사람도 산 밴댕이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속이 좁다고? 그렇지 않다. 한낱 작은 생선이 무슨 속이 좁고 넓고 하겠는가? 내 속은 유달리 압력의 차를 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