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진은 창덕궁 곳곳에 남아 있던 근대기 대한제국의 생활유물을 조사해 정리했다. 서양식 가구, 욕실용품, 식기류, 조리용구가 꽤 많았다. 대부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 수입한 것들이었다. 가구 가운데에는 당시 세계적인 가구업체인 영국 메이플사의 제품이 두드…
1991년 강원 삼척시 삼화제철 터에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그곳엔 선철(銑鐵) 생산을 위해 1943년 설치한 고로(용광로)가 8기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북한 제외)에 남아 있는 고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파트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고로 7기를 철거해 버렸다. 역사…
시계가 흔치 않던 1950∼70년대, 낮 12시가 되면 정오 사이렌이 울리곤 했다. 밤 12시엔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이보다 30분 앞서 오후 11시 반에 통금 예비 사이렌이 울리는 곳도 있었다. 어느 지역은 소방서에서, 어느 지역은 경찰서나 면사무소에서 사이렌을 울렸다. …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과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을 했다. 그 무렵 ‘자화상’이라는 시를 썼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
군항제가 열리는 곳, 경남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터리. 방사형 로터리를 둘러보면 옛 건물이 적잖이 눈에 들어온다. 러시아풍의 진해우체국(1912년), 중국풍의 육각 뾰족집 수양회관(1930년대),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화요릿집 원해루 그리고 길게 줄지어 선 적산가옥들. 그 옆으로 ‘…
인천 개항장 거리에서 배다리 마을로 넘어가는 싸리재 고갯길. 그 한 모퉁이 낡은 벽돌 건물의 출입문에 이렇게 쓰여 있다. ‘동양서림’ ‘새전과·표준학력고사·중학전과·새산수완성’. 출입문의 널빤지 틈새는 벌어졌고 하얀색 페인트 글씨는 탁하게 바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창고 분위…
2006년 일본의 미술 명문 무사시노미술대는 개교 80주년(2009년)을 앞두고 졸업생 가운데 최고 작가를 선정하기로 했다. 공모 심사 결과, 한국의 얼굴 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뽑혔다. 2009년 가을엔 도쿄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술대에서 권진규의 전작을 선보이는 특별…
늘 분주한 곳, 서울 남대문시장 앞. 숭례문에서 한국은행 쪽으로 가다 보면 최근 들어선 고층 호텔이 나오고 그 앞에 작고 독특한 2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다. 붉은 벽돌로 지었는데 지붕에 기와를 올렸다. 주변 분위기로 치면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 이런 설명이 붙어 있…
유달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굴뚝 세 개. 그중 하나는 1930년대 붉은 벽돌로 차곡차곡 30m를 쌓아 올린 것이다. 벽돌 몇 개는 떨어지고 부서졌어도 촘촘히 쌓인 붉은색 견고함이 목포 앞바다와도 잘 어울린다. 나머지 두 개는 1950, 60년대에 지은 철근콘크리트 굴뚝이다. 전…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넘어 기장역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뽀얀 백사장과 함께 자그마한 역 하나가 나온다. 동해남부선의 간이역, 옛 송정역. 바닷가 간이역은 단출하고 경쾌하다. 송정역도 그렇다. 간이역 건물은 대개 삼각 모양의 박공지붕을 하고 그 아래 중앙에 출입문을 배치한다. 그런데…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붉은악마의 함성이 들리는 곳,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노을공원 하늘공원 등). 3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대규모 쓰레기장이었다. 1000만 서울시민이 먹고 쓰고 버린 것이 총집결했던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는 원래 아름다운 꽃이 피고 새가 노니는…
이 건물은 안팎으로 구석구석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옆으로 고개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쪼그려 앉아 위로 올려다볼 필요도 있다. 적당히 수고를 들이면 숨겨진 매력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근처 광희문과 한양공고 사이.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
“그때는 제일모직이 최고였지요. 공장엔 기숙사까지 있었습니다. 기숙사 시설이 엄청 좋아 사람들이 제일대학이라고 불렀다니까요.” 제일모직 기숙사 가는 길, 택시 운전사는 그곳을 지금도 대학이라 불렀다. 1954년 대구 북구 침산동에 들어선 제일모직 대구공장. 국내 최초로 국산 양복…
1948년 12월 10일, 서울 용산구 시립병원 자제원(慈濟院)의 무연고 병실에서 한 여성이 숨을 거뒀다. 인근 원효로 노상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뒤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이곳으로 옮겨진 여성이었다. 52세. 행색은 초라했고 얼굴은 피폐했다. 나혜석(1896∼1948). 한국 최초의…
백범 김구의 죽음 하면 떠오르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경교장 2층 김구의 집무실 유리창 너머, 고개를 떨군 채 통곡하는 군중의 모습. 사진 속 유리창에는 총탄 구멍 두 개가 선명하다. 안두희가 쏜 총탄이 유리창을 관통한 흔적이다. 1949년 6월 26일 김구 암살 직후 미국의 사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