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수가 있었다. 19세기 서울에서 각 가정에 물을 배달해주던 사람들. 특히 함경도 북청 사람이 많아 북청 물장수라는 말까지 성행했다. 북청 사람들은 물을 팔아 번 돈으로 자식의 유학비를 댄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상수도 수돗물이 보급되기 전 얘기다. 1908년 서울 뚝섬에 경성…
건청궁은 경복궁의 북쪽 가장 깊은 곳에 있다. 그래서인지 늘 고즈넉하다. 건청궁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빨려들듯 더 깊은 곳 막다른 담장 근처까지 이르곤 한다. 담장 너머는 청와대. 먼발치로 경찰들이 오간다. 거기 건물 기단부와 주춧돌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보이지 않고 웬 주춧돌인가,…
떠돌이 소리꾼 부녀, 유봉(김명곤)과 송화(오정해)는 어느 날 남도땅 한옥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 그곳 사랑채에서 유봉은 눈먼 송화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겨준다. 바로 옆 누마루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고, 이에 맞춰 유봉이 구음(口音)을 부른다. 영화 ‘서편제’ 속 거문고 연주자…
그리스 신전 같기도 하고, 때론 로마 원형경기장 분위기도 난다. 계단식 원형 공간 여기저기 오래된 화강암 덩어리들. 절단한 기둥, 부서지다 만 기둥, 기둥 꼭대기의 장식물, 출입구 상부 구조물, 아치형 벽 장식, 발코니 난간 조각, ‘定礎石(정초석)’ 세 글자가 선명한 주춧돌…. 크기…
중세 유럽의 성채를 연상시키는 화려하면서 균형 잡힌 아름다움. 좌우 모퉁이에 망루처럼 돌출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인 서울 중구 남대문로 옛 한국은행 본관. 1912년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조선총독부 직속 금융기관) 건물로 사용했고, 광복 이후 195…
인천대교, 부산항대교, 이순신대교, 광안대교…. 멋진 모습을 자랑하는 사장교(斜張橋) 현수교(懸垂橋)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철제 케이블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광안대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산 수영구 망미동. 이곳엔 고려제강의 옛 수영공장이 있다. 고려제강은 교량용 철제 케이블을…
알뜨르. 그 뜻을 몰라도 속으로 되뇌어 보면 그냥 정겹고 아름다운 말이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의 들녘, 알뜨르. 아래(알)에 있는 넓은 들판(뜨르)이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이다. 알뜨르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 땅 위로 불쑥 솟아난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무슨 무덤 같기도 …
1970년 6월,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탤런트 최불암 김민자 부부가 며칠 전 결혼식을 올리고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답니다.” 그때, 온양온천은 최고 인기의 신혼여행지였다.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조선시대에 이미 왕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왕실은 여기 행궁을 짓고 …
정동야행. 매년 봄가을 밤, 서울 중구 정동길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정동야행이 열리면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해금 연주가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벧엘예배당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것은 1918년. 우리나라 첫 파이프오르간이었…
“임검 나왔습니다.” 1970년대 전후 통속소설에 종종 나오는 말이다. 임검(臨檢)은 행정기관 직원이 현장에서 조사하는 일을 뜻한다. 소설 속 임검 장소는 주로 여관 버스터미널 등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 임검. 그 오래된 용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광주시…
인천 사람들은 이곳을 해망대산(海望臺山)이라 부른다. 인천역 바로 옆, 인천항과 월미도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인천 중구 항동의 해망대산은 예로부터 인천의 요지였다. 이름도 예쁜 이곳에 오래된 호텔이 있다. 올림포스호텔. 1965년 세워진 인천 최초의 관광호텔이다. 호텔 외관은…
유명 사진작가 민병헌은 3년 전부터 전북 군산에 산다. 군산에 들렀다 근대의 흔적에 매료되어 그 즉시 경기 양평 작업실을 정리하고 군산으로 옮겼다. 요즘 군산에 가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남아 있는 건물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70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성당 빵…
땡땡 소리를 내며 전차가 막 출발할 즈음, 아이 업고 뛰어온 엄마가 애타게 손짓을 한다. 엄마 손엔 도시락이 들려 있다. 전차 안, 교복 입은 소년은 차창에 바짝 얼굴을 대고 난처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 옆엔 학교 모자를 들고 따라 나선 여동생이 보인다. 아뿔사, 늦잠 자고…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보수동 책방거리, 부산근대역사관(옛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을 지나 좁고 한적한 오르막길. 부산 중구 대청동, 복병산 언덕을 향해 한참을 걷다 보면 좁은 골목 끝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은 건물이 나타난다. 1934년 지어진 부산기상관측소다. 부산에 기상관측…
그곳, 문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태극식빵’ 안내문구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미 캘리포니아산 건포도와….’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정감이 가는 디자인이다. 카운터에 떡하니 놓여 있는 누런 나무 안내판엔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 계산을 정확히 합시다’라고 써 있다. 오래되어 칠이 벗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