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투 미츄, 레츠 고 광주!”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 김만섭(송강호 분)은 독일인을 태우고 서울에서 광주로 내달린다. 김만섭이 운전한 택시는 1974년산(産) 브리사. 브리사는 기아산업이 1974년 12월부터 생산한 자동차였다. 일본 차량을 들여와 재조립한 것이다. …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3권에 나오는 표현이다. 소설 속에서 경찰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남도여관. 1948년 당시 실제 이름은 보성여관이었다. …
1971년 말 겨울 어느 날, 서울 덕수궁 석조전 2층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과. 조개탄 난로 위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서 보리차가 끓고 있었다. 최순우 미술과장이 코트를 벗으며 정양모 학예관에게 말했다. 감격스러운 말투였다. “굉장한 일이 있어. 수정(水晶) 선생과 점심시간에 만났는데 그…
1938년 3월 경성제대 부속병원.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고향에 가져가지 말고, 선산 같은 데 쓸 생각을 말고, 서울 공동묘지에, 유상규 군이 누워 있는 공동묘지에 나를 묻어주오.” 안창호는 망우리공동묘지(지금의 망우묘지공원)…
1955년 어느 날, 일본 교토(京都)의 산조(三條) 뒷골목 골동거리. 길을 걷던 30대 재일동포 사업가가 한 진열장 앞에 멈춰 섰다. 뽀얀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였다. 그는 넋을 잃었다. 보면 볼수록 떠나온 고향이 떠올랐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200만…
경기 안산시 서울지하철 4호선 고잔역 바로 옆. 300여 m에 걸쳐 폭이 좁은 철길이 놓여 있다. 뽀얀 옛날식 역 간판엔 ‘원곡←고잔→사리’라고 써 있다.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의 흔적들이다. 철로 중간에 이런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아 옛날이 그립다 수인선 통학생’ ‘스무 살의 …
수령 500년 은행나무가 멋지게 서있는 언덕마을, 서울 종로구 행촌동. 은행나무 옆에는 권율 장군의 집터가 있고 그 앞에 아름다운 건물이 하나 있다. ‘딜쿠샤 1923.’ 1923년 건축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서양식 주택이다. 건물을 지은 사람은 당시 서울에서 UPA통신사(…
1950년 12월 31일 오후 10시경, 경기 파주 장단역. 개성 방향에서 북한의 화물 증기기관차가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기관차 위로 포탄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당시 기관사는 한준기였다. 국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한준기는 중국군에 길이 …
강원 영월군에 가면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원래 영화 ‘라디오 스타’(2006년 개봉)의 촬영 주무대였던 옛 KBS 영월방송국이었다. 그 영화와 함께 라디오를 추억하기 위해 2015년 박물관으로 다시 꾸민 것이다. 박물관엔 다양한 라디오들이 전시되어 있고, 직접 DJ가 되어…
1970년 10월, 서울 청계천 옆 종로구 관철동에 삼일빌딩이 들어섰다. 지하 2층, 지상 31층.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이 빌딩은 금세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 서울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되었고, 빌딩 주변은 층수를 세는 노인과 아이들로 늘 북적였다. 건물 주인은…
그곳에 들어서면 벽면 한복판에 빛바랜 초상사진 두 점이 걸려 있다. 그 밑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1910∼1932 김봉환’ ‘1932∼1968 김동훈’. 그리고 그 옆에 사진 없이 적혀 있는 또 하나의 이름. ‘1968∼ 김창남.’ 3대째 이어 오는 충남 서천군 아성대장간…
강원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민간인통제구역 출입구 바로 앞. 무너지다 만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뼈대뿐인 건물의 외벽엔 온통 총탄 자국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참해 실제 건물이라기보다는 마치 영화 세트장이나 설치미술 같기만 하다. 1946년 북한 조선노동당…
1968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에밀레하우스에서 개관기념전 ‘벽사의 미술’이 열렸다. 전시 작품은 기와 100여 점과 까치호랑이 그림을 포함한 조선 민화 12점. 국내 첫 민화 전시였다. 민화라는 이름조차 낯선 시절, 그 전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명품이 아니…
인천 강화도 서쪽 섬, 교동도. 북한 땅 황해도 연백이 지척이다. 수영을 잘하면 헤엄쳐 오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교동엔 피란민이 많다. 6·25전쟁 때 연백에서 자유를 찾아 건너온 사람들이다. 교동에 피란 온 연백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휴전선이 생긴 이후에도 식량과 물자를…
1936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부락(詩人部落)’ 창간호가 나왔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21세의 젊은 시인 서정주였다. 판권에 적힌 그의 주소는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당시 서정주는 여관에 머물며 시를 쓰고 있었다. 보안여관은 종로구 통의동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경복궁의 영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