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성분 원소가 같다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는지요? 흑연도 다이아몬드같이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긴 한데 흑연의 원자들은 단단히 결합된 다이아몬드와는 달리 서로 층을 이루면서 결합돼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성질 때문에 겹겹의 섬유로 만들어진 …
무더위와 열대야 때문에 산책도 숙면도, 어떤 일을 집중해서 해내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렇게 폭염에 지쳐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순식간에 가을이 오면 당황할 텐데. 어쨌든 지금은 이 타는 듯한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큰일처럼 느껴진다. 그날 해야 할 일을 간신히 하고 저녁을 맞는다. …
이맘때면 의욕도 식욕도 떨어진다. 그러다가 갓 쪄낸 옥수수 하나를 무심코 입에 대보았을 것이다. 옥수수를 먹지 않던 내가. 탱글탱글한 알들이 짭짤한 맛 고소한 맛을 내며 입속에서 톡톡 터졌다. 이런 게 바로 ‘여름의 맛’이구나! 그 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찐 옥수수로 냉동실을 꽉 …
‘끌리는 박물관’이라는 흥미로운 번역서가 있습니다. 여러 작가들이 자신에게 특별했던 박물관에 관해 쓴 글을 엮은 책입니다. 세상에 참 신기하고 가보고 싶은 박물관이 많다는 데 우선 놀랐고, ‘만약 이런 기획을 제안받는다면 어떤 박물관에 대해 써볼까?’ 하고 상상하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삼 주 동안 머물렀던 집의 욕실은 보통의 아파트나 맨션과 엇비슷한 구조여서 창문이 없는 데다 좁은 편이었다. 집주인은 욕실에 곰팡이가 필까 봐 매일 밤 청소하고 선풍기를 틀어 실내를 말리고 세탁물, 그중에서도 수건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게 신경을 쓴다. 한 상점에 갔다가 가격도 괜…
빈집에서 눈을 떴다. 몸이 천천히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 전등 줄에 매달린 추도 손으로 툭 건드린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해마다 몇 주씩 여름휴가를 보내는 이 도시에서 이따금 겪는 일이다. 미미한 진동이긴 해도 늘 그렇듯 감정은 크게 동요되고 만다. 내가 지내는 방의 출입문 가…
자코메티라면 인물이나 대상을 가늘고 길게 표현한 조각가라고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고 특히 문장 쓰기에 관해서는 그의 조각같이 불필요한 수식이나 군더더기 없이 쓰고 싶어 했다. 작고한 소설가 한 분이 언젠가 사석에서 소설에서의 문장은 목수가 나무를 매만지듯 그렇게 대패처럼…
기간이 얼마가 되든 일단 집을 떠날 때는 책부터 챙긴다.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지 꽤나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다. 무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된 책이 귀한 여행지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아껴가면서 읽어야 하는 만큼 의미가 있으면서도 새롭게 접해보는 책을 가져가고 싶은 …
몇 주 동안 지내러 갈 도시를 소개한 책의 개정판이 나왔기에 구매했다. 수록된 그 나라 전도와 시, 구의 지도들, 그리고 지하철 노선도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지도’라는 시가 떠올랐다. “평원과 골짜기는 늘 초록색,/고지대와 산맥은 노란색과 갈색,/가장자리가 찢긴 …
최근에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이끈 한 교수의 인터뷰와 그에 관한 칼럼들을 일간지 몇 군데서 읽었다. 글쓰기 실력 향상에 중요한 것은 학생들끼리 글을 읽고 평가해주는 “동료 평가(peer edit)”라는, 나도 크게 동의하는 그 말을 종강하는 날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식품 매장만 둘러볼 요량으로 오랜만에 동네 백화점에 갔다. 중국식당에서 어머니 칠순잔치를 하고 이차 모임은 집에서 하기로 했으니 마른안주라도 준비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층은 가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주방용품을 파는 매장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체코에서 생산된…
동생 생일 저녁을 집에서 먹기로 해서 주말에 모였다. 기온이 높아져서인지 가족들 모두 반팔 티셔츠를 입은 게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 내가 하버드대에 갔을 때 산 회색 티셔츠를, 막내 제부는 휴가지에서 사온 흰색 티셔츠를, 조카들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에 ‘unplugged(…
새 텔레비전이 배달돼 오기 전에 어머니와 오랜만에 작은방 청소를 했다. 지금은 어머니가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둘째 동생 방이었다. 그 동생이 직장 다닐 때 공부하던 책들과 이런저런 서류뭉치를 내놓으려는데 빈 엽서 한 장이 가볍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용하지 않은 관제엽서였다. 현재 순…
소설 수업을 수료한 제자에게 선물을 받았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가 닭들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내가 달걀을 좋아하는 게 생각나서 얻어왔다고 말했다. 닭들을 마당에 방사해 놓고 키워 얻은 알들이니 얼마나 신선할까. 박스에는 열여덟 개의 갈색 달걀이 들어 있었다. 이런 좋은 선물을 덥석 받…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 주말에 조카들이 집에 왔다. 여느 해처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인 나에게 색종이로 만든 핑크색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기 위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조카들이 종이로 접은 카네이션을 언제까지 줄지 궁금하다. 용돈으로 생화 한두 송이를 사는 게 간단하다고 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