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달할수록 ‘옛 생각’이 나는 건 인간의 본성일까. 세계 LP 음반 판매량이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영국에선 전자책 판매량은 나날이 떨어지는데 종이책 판매량은 되레 상승 중이다. 지난 달 발간된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 따르면 그렇다. 옛것을 그…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의 에세이집 ‘퇴사하겠습니다’를 읽어 내려가다 흥미로운 문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신문기자를 죽이는 데 칼은 필요 없습니다. 기사가 실리지 않게 되면 신문기자는 살 수 없으니까요.’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배우 이순재 …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난쟁이라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는 보잘것없는 난쟁이였다.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모함을 받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는 잡초였다. 최근 시즌 7이 방송 중인 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난쟁이 캐릭터 ‘티…
5일 중국 지안(集安)시의 고구려 유적 답사 중 태왕릉(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에서 동행이 돌무더기 속 기와조각(사진)을 주워 기자에게 건넸다. 손가락 자국이 두 개, 지문이 선명했다. 1600년 전 기와를 구운 고구려 도공의 지문일 게다. ‘한국인 최고(最古)의 지문 발견’이라는 1면…
불교 의식에 정통한 인묵 스님이 19일 대한불교조계종의 ‘어산어장(魚山魚丈)’에 임명됐다. 어산은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로 범패(梵唄)로도 불리며, 어장은 이 분야의 최고수를 가리킨다. 어산어장은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일종의 명예직이다. 범패와 비교할 때 오히려 어산이라는 표…
덜컹, 덜컹… 더얼컹….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커다란 광역버스는 오늘도 바쁘게 리듬을 탄다. 과속방지턱을 연달아 넘는데 속도를 크게 안 줄이니 상하 반동이 심하다. 일찌감치 비슷한 각도로들 고개 숙인 입석 손님들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심히 버스 따라 춤춘다. 출렁출렁. …
집 건너편 오래된 상가건물 한 채가 지난주 허물어져 공터가 생겼다. 건물이 사라진 땅은 언제나 그 건물이 기억에 남긴 크기보다 좁아 보인다. 모든 건물이 일시적 구획이란 사실을, 왜 자주 잊을까. 대학 2학년 2학기 설계 주제는 교회였다. 과제로 주어진 땅은 서울 신촌의 가파른 언…
하나의 공연이 오르기 전, 대개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프레스콜(Press call·기자시사회)을 연다. 약 2∼6개월 준비한 작품들이 가장 까다로운 관객 앞에 서는 순간이다. 보통 프레스콜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면 이후 티켓 예매도 잘되는 경우가 많다. 공연 관계자로서는 긴장된 순간이 …
뉴스를 다루는 곳의 데스크라는 자리에 있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접한다. 뉴스는 많고 지면은 부족하다. 그래서 A는 지면, B는 인터넷, C는 알고만 있자는 식으로 교통 정리한다. 최근 접한 얘기 중 가장 관심이 가지만 아쉬웠던 게 가수 나훈아(70)의 컴백이다. 11년 논란과 칩거…
얼마 전 휴가 때 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바이슨(사진)을 만났다. 버펄로라고도 불리는 바이슨은 이 공원의 마스코트로 우뚝 솟은 두 뿔과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곳곳에서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지만 한때 바이슨은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온 백인…
올봄, 프랑스 파리에서 연수할 때다. 동네 극장에 ‘미녀와 야수-일요일 오전 11시 특별 관람료 4유로(약 5240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평소보다 절반 이하의 관람료라 눈이 번쩍 뜨였다. 극장 앞에서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소책자를 나눠 주고 있었다. ‘(다른 …
주말 중국 드라마 ‘사조영웅전 2017’을 봤다. 아마 중년들은 무협소설 ‘영웅문’ 1부라고 해야 친근할 터.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 절대고수 5인을 일컫는 이 호칭은 당시 남자 중고교에선 람보나 코만도에 버금가는 아이콘이었다. 근데 이 작품, 참 끈질기게 리메이크된다.…
강원 강릉 출신인 조순 전 서울시장(89)은 한학자인 부친에게 어릴 적부터 유학을 배웠다. 그에게 ‘강릉엔 예부터 훌륭한 선비가 많이 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멋진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 전 시장은 “율곡이 어머니 신사임당에 대해 쓴 ‘선비행장(先비…
일본 나고야로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그곳에서 만난 요시코 씨(81)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는 부모님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요시코 씨의 집에 머물며 그의 하루를 지켜볼 수 있었다. 요시코 씨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남편과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한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목마른 나는 머리 긴 여자가 좋아요. 그리고 내가 배고플 때 라면을 사주면 더 좋고. 그리고 그리고 막걸리를 마실 수 있으면 더 좋구요.” 기형도 시인(1960∼1989)이 1982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말은 그가 얻어먹은 밥값 대신 즉석에서 시를 써서 건넨 여성의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