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의 백화산 자락에 있는 하늘소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평범한 산골마을의 홈페이지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온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인간들이 자신의 분뇨를 바다에 버리지 않고 흙으로 되돌린다면 인류가 먹고살기 위한 식량은 충분할 것이다.’ 마을엔 수세식 변기가 없고 …
음식을 맛보고 맛집을 찾는 일에 종사하면서 가장 어려운 숙제는 건강한 짜장면을 찾는 일이었다. 짜장면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짜장면에 대한 불신 또한 만만찮다. 중국집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시판 춘장은 검은빛을 띠는데 이는 전분으로 만든 캐러멜 색소 때문이다. 여기에 다량의 …
여행을 떠나면 집에선 밥 먹듯 거르던 아침을 꼭 챙겨 먹는다. 숙박비에 포함된 아침밥을 거르는 게 내심 아깝기도 하거니와 하루 2만 보씩 걸어 돌아다니는 에너지를 감당하려면 영양분을 충분히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의 조식 뷔페에는 죽, 밥, 국수 등 탄수화물이 가득하지만 언제…
제 유년의 기억은 대략 네다섯 살 때부터 시작합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기억들마저도 발굴 현장의 깨진 유물 조각 같아서 퍼즐 맞추기를 해야 할 정도이지요. 당시 어머니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경상도 시골 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연히 신문도 배달되지 않아 직장 일로 멀리 계셨던 아버지…
도시에 사는 싱글 샐러리맨과 외식 횟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하루에 두 끼 안팎을 외식으로 해결하는 직장인은 한 달에 40∼50번 이상의 끼니를 집 밖에서 먹게 된다. 이때 압도적으로 많은 외식 메뉴는 한식 단품이었다. 된장찌개, 비빔밥, 백반 등 한국인이라면 뻔히 아는…
프랑스 디저트 중에 ‘파리브레스트(Paris-Brest)’라는 케이크가 있다. 이 디저트는 동그란 바퀴를 연상시키는데 1891년부터 시작된 ‘파리-브레스트-파리 자전거 경주’를 기념하고자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정치인인 피에르 기파르가 1910년 프랑스의 제과사인 루이 뒤랑…
지난겨울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전’에 전시된 유물들은 100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멋지고 훌륭했다. 전시관의 끄트머리에 고려시대 다실을 재현했는데 청자로 만든 찻잔과 다구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손잡이 끝에 거품기가 달린 은제 차시(찻숟가락)는 고려인들이 가루차를 거품 내어 마셨다…
몇 년 전 바스크 음식을 주제로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피레네산맥 서부 바스크 지역의 북쪽은 프랑스, 남쪽은 스페인에 걸쳐 있다. 진정한 바스크인들에게는 행정국가가 프랑스든 스페인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단지 바스크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는 바스크…
따스한 봄이 왔나 싶다가도 코끝이 매큼한 바람에 시리다. 재채기를 하다가 매콤하고 따뜻한 음식과 술 한잔으로 저녁을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옷깃을 여미고 생선찜 집을 찾는다. 생선찜을 주문하자 주인은 그때부터 분주하게 조리한다. 무를 자박자박하게 끓이고 감자는 포슬포슬 익히고, 칼칼…
“빵으로 하실래요, 밥으로 하실래요?” 양식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시작된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해, 일곱 살 많은 대학생 언니를 따라나서며 첫 소풍을 갈 때처럼 설레었다.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지막이 클래식이 흐르고 알록달록한 스테인드…
구태의연했던 국내 맥주업계의 뒤통수를 느닷없이 가격한 사람은 대니얼 튜더라는 영국인입니다. 우리 맥주 맛이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못하다는 그의 충격적인 말에 업계는 물론이고 국민들의 자존심까지 상한 것이지요. 못사는 북한 사람들이 더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오키나와 여행 중에 만났던 현지 토박이 친구는 “옛날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는 결혼을 안 했어”라고 말했다. 순간 오키나와가 일본에 속한 섬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졌다. 친구 말을 곰곰 생각해보니, 오키나와 사람들 특유의 기질과 본토인들에 대한 피해의식의 방증이겠구나 싶…
작은 이탈리아 식당, 라비올리를 만드는 셰프들은 대체로 침착하고 인내심이 강했다. 그들은 인스턴트 재료가 주는 편안함과 원가 절감의 유혹을 뿌리쳤다. 새벽에 일어나 밀가루와 계란 소금으로 생면을 반죽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소를 만들고 소스를 개발하는 데 감각을 총동원한다. 라비올리…
마치 그것은 망자가 죽은 후 49일간 7번의 심판을 받을 때 두 번째로 간다는 화탕지옥(火湯地獄)과 흡사한 모습이다. 점차 뜨겁게 달궈지며 화염에 휩싸인 듯 붉은 일렁임이 거세게 끓기 시작하면 매캐하고 알싸한 향이 코를 찌른다. 그 속에 빠지는 순간, 열기에 금세 쪼그라들며 화기로 붉…
흔히 회자되는 ‘반가음식’이란 대체 무엇을 이르는 걸까요? 딱히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궁중음식에 상대되는 단어일 것이고, 양반가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란 뜻 같습니다. 그렇다면 평민음식이란 말도 있어야 할 터인데 잘 쓰이지는 않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과거 일반 백성들은 김치, 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