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어느 요리 평론가가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파스타는 국물에 말아놓은 듯 소스가 흥건한 국적 불명의 요리’라고 혹평한 글을 읽은 일이 있다. 초창기 어설픈 초보 요리사들이 인기 있는 서양요리랍시고 흉내 내듯 만들어 내는 일이 흔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퍽퍽한 요리보다 국물 음식을 …
멍게 철이 시작됐습니다. 5월부터가 제철이라는데, 개인적으로 도다리쑥국이 봄의 시작이라면 멍게비빔밥은 봄의 절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멍게의 표준말은 우렁쉥이지만 사람들이 사용하는 빈도로 따졌을 때 멍게가 압도적이라 둘 다 표준어가 됐지요. 멍게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
한국 요리를 처음 배울 때 마늘 다지는 것처럼 고약스러운 일이 없었다. 마늘을 여러 양념 중 하나로만 여겨 이미 간 것을 그냥 사용하기도 하지만 신선한 양념 맛을 중시한다면 대개 통마늘부터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평평하지도 않은 작은 토종 종자의 삼각꼴 마늘을 편으로 저미듯 얄팍얄팍 …
입을 벌렸다. 쌉싸래한 팥 내음이 코를 뚫는다. 이윽고 들어오는 묵직한 버터. 혀끝을 지그시 놀리니 팥을 감싸며 녹아내린다. 빵은 씹는 맛이 그만이다. 홍어와 삼겹살, 김치처럼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 있다. 팥과 버터, 빵의 앙상블 ‘앙버터’다. 팥소는 앙버터의 ‘심장’이다. 장인…
20여 년 전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공부하겠다는 남편을 따라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 집세와 물가 높기로 악명 높은 뉴욕에 살며 주머니 가벼운 유학생으로 4년을 버텼다.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학교 근처에 살며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결했다. 서른 먹은 늦깎이 유학생 남편은 그…
오래전, 친한 후배 아버지가 동네 어르신들과 경로당에서 복요리를 드시고는 단체로 입원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에는 복어독이 미량 함유된 캡슐을 먹으면 골프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속설에 동반자들끼리 나눠 먹고 골프장으로 가다가 참변을 당한 사건도 기억이 납니다. 복요리는 전통…
콩 하면 생각나는 마을이 있다. 강원 삼척시 두타산 인근의 고든내마을은 옛날에 쌀은 없고 콩만 흔해서 콩을 어떻게 하면 밥과 비슷하게 먹을 수 있을까 늘 궁리하던 곳이었다. 가장 손쉽게 만드는 것이 두부였기에 두부를 만들고 남는 비지로 비지떡을 만들거나 그 떡을 구워 만든 비지떡…
봄의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다. 엊저녁에 남겨둔 식은 밥과 국으로 연명한다면 올 한 해도 꽤나 퍽퍽하고 지루한 삶이 연속될 것이다. 일상의 루틴을 지키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곳, 오늘 하루쯤 프렌치 런치로 테이블을 바꾸자. 오감이 꽃망울처럼 열리는 짜릿한 기분에 빠질 것이…
이번 겨울 일본 도쿄에 갔을 때다.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본 잡지에 실린 깃사텐(喫茶店·다방의 일본식 명칭) 특집기사가 눈을 끌어당겼다. 마음에 드는 다방 하나가 마침 숙소로 정한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당장 발길을 향했다. 시부야 중심가를 살짝 벗어난 골목길 후미진 곳에 …
평소 먹는 점심 메뉴가 주로 무얼까 하고 꼽아봤더니 대다수 국물이 있는 음식입니다. 설렁탕, 부대찌개. 순댓국, 짬뽕, 해장국, 육개장, 소머리국밥, 김치찌개…. 이 정도라면 대중가요 제목인 ‘사랑 없이 난 못 살아요’라는 명제를 수긍하지 못하더라도, ‘국물 없이 난 못 살아요’만…
오래전에 엄마와 함께 동해안을 여행하다 강원 강릉 중앙시장에 들른 적이 있다. 수산물 시장 지하 한쪽에서는 거대한 김을 쏟아내며 손님이 점찍은 문어를 직접 삶아 팔았다. 동해안까지 왔으니 문어를 삶아 가면 한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엄마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10여 분 문어가 …
설날이 지났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도 배부르게 들었다. 정말, 당신은 복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시간조차 초조함과 불안함이 감돌고 있다면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행운 바라기가 되기보다는 불행을 피하는 편이 백배 낫다고. 역설적이지만 일생일대의 행운은 가장 불안하…
초등학교 4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다. 학기 초 아이들을 면담하던 담임선생님이 학생기록부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윤이, 너 알고 보니 강원도 감자바위 ‘촌년’이구나.”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난 지 만 10년, 서울을 떠나본 적 없는 내가 촌년이라니. 시골아이 취급에 맘이 상했…
음식의 유래와 함께 그 명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미식(美食)의 첫걸음입니다. 식도락에서도 조금 색다른 음식 이름이나 식 재료 등에 관한 작은 정보만 알고 있으면 어디서건 저처럼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독특한 이북 음식 이야기입니다. 어복쟁반은 어북쟁반이라고도…
매일 닥치는 끼니도 고민이지만 괜스레 딱 한잔이 당길 때가 있다. 요즘처럼 북극 한파가 몰아치면 더욱 그렇다. 한동안 요리 공부를 위해 머물렀던 일본 도쿄 거리에 얽힌 사연과 변해 가는 서울의 한 골목 풍경이 오버랩된다. 도쿄 신주쿠 인근에 골든가라는 거리가 있다. 200여 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