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식을 배우면서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번은 선배 강사가 아파서 대신 강의를 하게 됐는데 요리가 신선로였다.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이 호사로운 탕에 들어가는 수고는 만만치가 않았다. 평소 잘 접하기 힘든 여러 가지 전을 부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종잇장같이 마른 석이버섯을 물…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무용총 수렵도나 서양의 라스코 동굴벽화에서 보듯이 인류는 주로 사냥을 통해 고기를 얻었습니다. 오랜 기간 다양하게 발전해온 수렵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졌고, 일부에선 호사스러운 취미로 즐기고 있지요. 최근 영국 왕실의 사냥 장면이 자주 나오는 넷플릭스 드라…
우산으로 하늘을 가리고 마스크로 호흡을 가리고 식당 앞에 도착했다. 이전에는 더 향기롭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아다녔다. 식당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도전적인 일상을 시작하는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좀 더 건강하고 위생적이고 믿을 만한 곳을 찾는다. …
오늘 소개해 드릴 음식은 트리파 알라 로마나. 로마식 소 내장 스튜입니다. 주로 소의 첫 번째 위인 양(@) 깃머리와 두 번째 위인 벌집 양을 사용하는데 지방이 거의 없고 단백질이 풍부해 보양식으로 많이 먹습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내장탕과 비슷할 텐데 로마식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는 해…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 문화 올림픽인 엑스포가 2015년에는 음식을 주제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렸다. 145개 참가국은 순간이 아닌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음식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전시했다. 그해 7월은 아주 무더워 넓은 전시장을 돌아보는 것은 작은 고행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항상 늦게 퇴근을 하셨기에 어린 형제는 어두워질 때까지 골목 어귀에서 놀며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죠. 하지만 그 기다림은 작은 아픔을 남기기도 했는데 다름 아닌 동상입니다. 매서운 추위에도 남의 집 굴뚝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다 걸린 훈장이라…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한 주,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평양냉면이나 막국수 전문점으로 향할 때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중국집이다. 불과 기름의 잔치인 중국요리에서 “뭐 먹을 것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여름을 노리고 웅크렸던 ‘잠룡’이 있으니 중국냉면이다. 물론 이 메뉴는 한국식 짜장면처…
한 끼 식사로 모자람 없고 몸에도 좋은 샐러드를 소개해드립니다. 미식의 천국인 프랑스에는 요리가 워낙 다양합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이고 흔히 먹는 샐러드가 살라드 니수아즈(Salade Ni¤oise), 즉 니스식 샐러드입니다. 대중적 샐러드는 집집마다 고유의 요리법이 있지만 공통되…
‘농가맛집’을 개업하는 컨설팅을 한 적이 있다. 농가맛집은 농사짓는 사람이 직접 식당을 운영하는 곳을 말한다. 예를 들어 콩 농사를 지어 된장, 간장을 담그고 그걸로 식당 음식을 만들어 고객 응대까지 하는 것이다. 농사부터 외식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진정한 ‘팜 투 테이블(Farm to…
남들보다 식당에 관한 정보를 조금 더 안다는 원죄 탓에 시도 때도 없는 연락을 받습니다. 진료할 때도, 식사할 때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 시간에도 제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지인들은 ‘지금 어디를 여행 중인데 맛있는 식당 몇 곳을 추천해 달라’는 것을 주로 묻지요. 귀찮기도 하지만 …
서울 강남구 청담동 큰길가에 정겨운 카페가 있다. 언뜻 보면 일반 가게인데 문 열고 들어가면 한옥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대청마루 소반 주변에 둘러앉아 떡과 과자, 전통 차와 빙수를 먹는다. 카페 ‘강정이 넘치는 집’은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병과점(餠菓店)이다. 강정 유과 인절미…
파에야(paell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8세기 아랍 사람들로부터 전래한 쌀을 이용한 발렌시아 지방 전통 음식이었으나 이제는 스페인 전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신료라는 사프란의 노란색, 파프리카와 토마토의 붉은색은 그 자체가 완벽하게 …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곧잘 하는 일이 있다. 큰 냄비에 대추 한 주먹과 물을 가득 넣고 꺼질 듯 말듯 약한 불에서 뭉근히 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청소를 하든 책을 읽든 다른 일에 몰두한다. 1시간이 지나면 대추의 단내가 집 안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몇 시간 걸리는 대추차를 끓이다 …
우리나라 횟집은 천편일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내륙에 있건 바닷가에 있건 가릴 것 없이 식당 외관과 내관, 영업 방식, 음식 구성이 오십보백보라는 말입니다. 식당 입구에는 산소발생기가 달린 커다란 수조가 있고 그 안엔 불안한 눈빛의 활어들이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입만 …
모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간 제주행. 당일치기 일정이기에 한 끼는 정말 ‘제라하게’(‘최고로’ ‘제대로’라는 뜻의 제주 방언) 먹어야 했다. 부모님께서 웃으며 ‘찜해’ 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향하는 곳은 부동산이 아닌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정이 많은 지인, 부동산 중개업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