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명론자도 아니고 시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직업이 사람을 만나 그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편린을 듣는 일이다 보니, 가끔 어느 시인의 시를 떠올릴 때가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
우선 그에게 극작가 겸 연극평론가가 많으냐고 물었다. 둬 명의 이름을 얘기하는데 내가 귀에 익지 않다는 표정을 짓자 대뜸 “브레히트도 그랬다”고 했다. 자신을 브레히트에 비견한 것이 아니라, 극작가 겸 평론가가 ‘있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듯했다. 그가 방어적으로 나오는 …
그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이름 앞에 어떤 타이틀을 붙여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는 지금껏 내가 인터뷰한 극작가, 연출가, 배우, 무대디자이너(무대, 의상, 조명, 분장, 영상), 기획 등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도 분명 ‘연극인’이다. 더욱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 참…
나이에 비해 세상을 빨리 관조하게 된 것 같다. 영화 ‘시네마천국’에 나오는 어린 영사기사 ‘토토’만큼 영화를 좋아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던 듯하다. “영화판에서는 잘 안 풀렸다. 큰 영화사를 갔는데도 안 되고…. 세 번 모두 준비만 하다 끝났다. 도중에 한예종 영상원과 …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경우에는. 기자 출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기자 출신이라서 인터뷰를 안 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인터뷰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나. “본인의 의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한계가 있다.” ‘기자스럽게’ 물고 늘어졌다. 그럼 당신은…
연극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운명’이라는 단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에 이끌려 연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말이다. 그러니 운명은 사랑이다. 그의 입에서도 ‘운명’이라는 말이 나왔다. “1991년에 다시 한국으로 왔다. 그전부터 다시 한국에 오고 싶…
우선 이름에 담긴 의미가 궁금했다. 중성적인 이름인 데다, 이름은 대개 어떤 뜻을 담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1925년생이신데, 마흔 넘어 얻은 외동딸이 바로 나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지켜 화목하게 잘 살라는 뜻으로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셨다.” 오빠가 …
인터뷰가 끝날 무렵, 무례한 질문인 줄 알면서도 물어봤다. “혹시, ‘4차원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나.” ‘4차원’은 보통 사람과 말과 행동이 달라 특이하게 생각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유행어다. “너무 많이 들어봤다.” 내 예상이 맞은 것이다. 예를 …
사실, 질문은 준비했지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물어볼 작정이었다. 유명한 부모와 같은 길을 걷는 전문인들이 부모 얘기를 꺼내면 싫어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나로, 더 정확히 얘기하면 내 능력은 그냥 내 능력으로 평가해 달라는 무언의 항의다. 그러나 …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180㎝의 큰 키는 한데바람에 이리저리 시달렸을 것 같고, 검은 얼굴은 내리 쬐는 태양에 무방비로 노출된 탓이라고 잠시 착각에 빠진 건. 몸은 착각일지 몰라도 그의 말은 확실히 자유로웠다. “술은 고1때부터 본격적…
그를 인터뷰하기 전날, 그가 출연하는 ‘초혼’이라는 연극을 봤다. 장일홍이 쓴 ‘이어도로 간 비바리’를 2004년에 이윤택 연출이 재구성해 연출했던 것을 13년 만에 ‘굿과 연극’시리즈(씻김, 오구, 초혼)로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초혼’이 ‘굿극’에 들어가는 연유는 제주 4·3…
당신은 독한가, 라는 게 첫 질문이었다. “그 말이 나쁘지 않다. 말을 바꾸면 집요하고, 깊이 판다는 뜻 아니겠는가. 누가 독하기만 하다고 하면 싫겠지만, 독하게 연극한다고 하면 기꺼워할 것 같다.” 그런데 ‘깐깐하기로 대학로에서 악명 높은’이라는 수식어는 ‘싫다’고 했다.…
“무대제작소가 경기도에 많아 형편은 어렵지만 자동차를 샀다. 1980년대 후반 서울종로경찰서 관내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직업을 ‘무대미술가’라고 했더니 경찰이 ‘인테리어’라고 썼다. 그게 아니라고 했더니 경찰이 ‘이 친구야, 그게 그거지’라고 했다. 2년 후…
그는 자책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연출한 ‘왕위주장자들’은 분명히 실패했고, 실패의 원인은 자기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평가가 극과 극이다. 반응에 충격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뭐가 나쁘다는 지적은 없지만 SNS에는 ‘불호’가 많다. 나는 리허설 때부터 이미 문제가 있…
그를 만나보고 처음에는 ‘순한 반골’ ‘착한 악동’이라는 말을 쓸까 했다. 그러나 ‘쿨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뚜렷한 극작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저는 삶의 뚜렷한 목적의식도, 의지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솔직히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