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의 늙은 각수승 묘순은 재주가 뛰어나지만 성품은 순박하다네. 글씨 새기는 것은 이번 생의 업이고, 스님 노릇은 허깨비로다.” ―이수광의 ‘지봉집(芝峯集)’에서. 금속활자는 조선에서도 활발히 사용했지만 한 번에 10여만 자 이상을 주조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그래서 주로 나…
“우리나라 속어로 회자수(회子手)를 망나니(亡亂)라고 하니, 지극히 싫어하고 천시하는 말이다.”―황현(黃玹·1855∼1910)의 ‘오하기문(梧下記聞)’에서. 망나니가 큰 칼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술 한잔 들이켜고 입으로 뿜어 칼날을 적신다. 망나니라는 말은 도깨비라는 뜻의 …
“관원이 율관·의관과 함께 한성부 서리, 하인 및 오작인(오作人) 등을 거느리고 시체를 안치해 둔 곳에 도착해 먼저 공초를 받는다. 그 다음에 검시(檢屍·시체를 조사함)를 실시한다. 날이 저물 경우 이튿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검시한다.”―‘심리록(審理錄)’에서 조선시대 살인 사건이…
“간교함이 날로 심해지고, 사기가 날로 들끓고 있다. 굶어죽은 시체를 업고 밤에 남의 집 문을 열어젖히고 주인을 급히 부른다. 성질을 돋게 하여 서로 주먹질을 하는 데까지 이른 뒤에 큰소리로 ‘주인이 내 친구를 죽였다. 관가에 고발하겠다’라고 한다. 주인은 영문도 모르고 무거운 대가를…
“중국에서는 종이를 금처럼 귀하게 여겨 한 조각도 땅에 버리는 것을 볼 수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종이를 흙처럼 하찮게 쓰니….”―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중 조선시대에는 책과 편지뿐 아니라 벽지, 장판, 창호 등 생활용품부터 옷, 갑옷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쓰였…
“함북간이라는 자가 있다. 피리도 제법 불고 이야기와 광대놀이를 잘했다. 남들의 생김새와 행동을 보기만 하면 바로 흉내 냈는데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또 입을 오므려 각종 피리 소리를 냈는데 소리가 웅장해 몇 리까지 퍼졌다.”―성현, ‘용재총화’에서 조선시대, …
“경상도에 붓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몇 해 전 두세 자루를 얻어 썼는데, 국내에서 으뜸일 뿐만 아니라 천하제일이라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 최고의 서예가 김정희는 경상도의 이름 없는 필공(筆工)이 만든 붓…
“눈을 찔러 장님 된 악사 사광이던가, 동방의 가곡 스물네 소리를 모두 통달했다네. 가득 모여 100전 되면 술에 취해서 가니, 어찌 반드시 서평군을 부러워하랴.”―조수삼의 ‘추재기이(秋齋紀異)’ 중 ‘손고사(孫고師·맹인 가수 손 씨)’ 일부 전통시대 가곡, 시조, 가사 따위를 노…
“도성 안에 금화(禁火)의 법을 담당하는 기관이 없어 백성들이 부주의로 화재를 일으키면 집이 타버려 재산이 탕진되오니 그들의 생명이 애석하옵니다.”(조선왕조실록 1426년 2월 26일 기사 중) 1426년(세종 8년) 2월 15일 인순부(동궁에 딸려 있던 관아)에 살던 노비의 집에…
“변방 백성 중에 조총을 잘 쏘는 자를 봤습니다. 호랑이가 3, 4간(1간은 약 1.8m 남짓 거리)쯤에 있을 때 비로소 총을 쏘는데 명중시키지 못하는 예가 없으니 묘기라 할 수 있습니다.”(승정원일기, 1724년 10월 15일 기사에서) 조선에서 중요하게 여긴 두 가지 야생동물이…
“매사냥꾼은 팔뚝에 매를 얹고 산을 오르고, 몰이꾼은 개를 몰고 숲을 누비네. 꿩이 깍깍 울며 산모퉁이로 날아가니, 매가 회오리바람처럼 잽싸게 날아오네.” ―정약용, ‘和崔斯文游獵篇(최 선비가 사냥을 보고 지은 시에 답하다)’에서 옛날 매를 길들여 꿩을 잡는 이들을 매사냥꾼, 곧 …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지어 놓았네, 만지산 전산옥(全山玉)이야 술상 차려놓게….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뜬구름만 흘러도, 팔당주막 들병장수야 술판 벌여 놓아라.” ―‘정선 아리랑’에서 조선 초부터 강원도와 충청도에서는 목재를 공물로 바쳤다. 전국 각지의 나무가 서울로 모였다. …
“다 뒤져보니 겨우 70푼이 있는데, 전인(專人) 이놈은 두 냥이 아니면 안 가겠다고 하는구나. 네 어머니에게도 돈이 없고, 네 형도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조병덕(1800∼1870)의 편지에서 조선시대 편지는 주로 인편(人便)으로 전했다. 인편이 닿지 않으면 편지를…
“노비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면서 집안일을 맡아보는 자를 겸인(겸人)이라 한다.”(최신·崔愼, ‘화양문견록·華陽聞見錄’에서) 조선시대에는 집사를 ‘겸인’이라고 했다. 청지기(廳直), 소사(小史), 통인(通引)이라고도 불렀다. 그들은 주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집안일을 도맡았다. 중…
“‘합강(合綱)’과 같은 판본의 책이라면 경사(經史)와 제자서(諸子書), 잡기(雜記), 소설(小說)을 따지지 말고, 한 책이든 열 책이든 백 책이든 구해오기만 해주시오.”(유만주·흠영·欽英·1784년 11월 9일) 이덕무(1741∼1793)는 생활이 궁핍해지자 ‘맹자’ 한 질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