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싼 흰 가루 한 봉지를 펼쳐 놓고 문 곁에서 말하기를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구나. 늙은 아내는 병이 많아 머리 감기조차 못하고 화장대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네.”(이색의 ‘매분자·賣粉者’에서) 기생들을 왕실로 불러들여 연희를 자주 즐겼던 연산군은 보염서(補艶署)를 두어…
“대국 세 판이 진행되며 득과 실, 날카로움과 무딤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럴 때면 구경꾼 모두 눈을 부릅뜨고 한쪽 발을 굴리며 그 형세를 돕고자 훈수를 두었다.”(조선 후기 학자 안중관의 ‘회와집·悔窩集’ 중) 삼국시대부터 사랑받던 바둑은 조선후기에 이르면 온 가족이 즐기는 놀이…
“저 역관(譯官)들은 자기들의 목전 이익만 탐하고 국가의 장구한 계책은 알지 못하여, 수십 년 이래 밤낮 오직 당전의 통용을 소원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화살 가는 데 따라 과녁 세우기’나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다를 바 없다.”(박지원 ‘연암집’에서) 조선은 정기적으로 청나…
“태상 4년(408년)… 고구려가 다시 사신을 보내 천리인(人) 열 명과 천리마 한 필을 바쳤다.”(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남연(南燕)의 군주 모용초(慕容超)에게 두 가지 선물을 보냈다. 천리마와 천리인이다. 천리인은 천리마처럼 하루에 1000리(400km)…
“용산의 한 차부가 서울 성중으로 짐을 운반하고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대개 죄수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 용산 차부가 수레로 실어가는 것이 상례였다.”(구수훈의 이순록·二旬錄에서) 조선시대 사람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운송업자를 차부(車夫)라 불렀다. 이들은 조선 초…
“가장이 금하지 못하니, 부녀자들이 가체를 더 사치스럽게 하고 더 크게 만들지 못할까 걱정이다. 근래 어떤 집의 열세 살 난 며느리가 가체를 높고 무겁게 만들었다. 시아버지가 방 안에 들어오자 며느리가 갑자기 일어서다가 가체에 눌려 목뼈가 부러졌다.”(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이날 낮부터 감기를 앓기 시작해서 크게 아팠다. … 월매가 내내 병구완을 해주었다. 월매와 함께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눈물이 흘렀다. 의향의 어머니도 병구완을 하러 왔다.”(부북일기·赴北日記 1645년 4월 3일) 조선에서 무과에 합격한 군관은 1년 동안 의무적으로 최전방인 함경…
“표암 강세황이 ‘내가 남에게 서법을 많이 가르쳤으나 정 군처럼 빠르게 성취한 자는 없었다’라고 했다. 우리 형제의 과거시험지와 원고는 모두 그가 글씨를 썼다.”(심노숭의 ‘자저실기·自著實紀’ 중에서) 1차 기록물의 대부분을 직접 붓으로 작성했던 시대, 글씨는 지식인이 갖춰야 할 …
“맹인은 사농공상에 끼지 못해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으나, 주역을 배워 점을 치고 겸해서 경문을 외워 살아간다. … 저잣거리를 다니며 노래하듯 ‘문수(問數·운수 물어보오)’라 외친다.”(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별다른 직업이 없던 ‘심청전’ 속 심학규와 달…
“도라지를 인삼으로, 까마귀 고기를 꿩고기로, 말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이는 자도 있고, 누룩에 술지게미를 섞고 메주에 팥을 섞는 자도 있다.…요즘은 소금이 귀한데 간신히 사고 보면 메밀가루를 섞었다.”(윤기·尹<의 ‘무명자집·無名子集’ 중 ‘협리한화·峽裏閒話’에서) 조선 후기 서울에…
“특별히 집주름이 나타나 생업을 꾸리니, 큰 집인지 게딱지인지를 속으로 따진다. 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값으로 받으니, 동쪽 집 사람에게 서쪽 집을 가리킨다.”(신택권의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중에서) 조선시대에는 부동산중개업자를 ‘집주름(家쾌·가쾌)’이라 불렀다. 이들이 직…
“선조 27년(1594년), 굶주린 백성이 대낮에 서로 잡아먹고 역병까지 겹쳐 죽은 자가 이어졌다. 수구문 밖에 그 시체를 쌓으니 성보다 높았다. 승려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매장하니 이듬해에 끝났다.”(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조선시대에는 전쟁이나 기근으로 길에서 죽은 사람이 적지 않…
“종로 담뱃가게에서 소설 듣던 사람이 영웅이 실의하는 대목에 이르러,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더니 담배 써는 칼로 소설책 읽어주는 사람을 쳐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한다.”(정조실록 정조 14년·1790년 8월 10일 기사에서) 18세기 조선은 소설에 빠졌다. 궁궐에서 촌구석까…
“그 친구는 종본탑(宗本塔·현 서울 탑골공원 주변으로 추정) 동편에 살면서 매일 마을의 똥을 져 나르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서 바지게(거름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뒷간을 치는 것이다.”(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서) 1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