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8월 호남의 관문 남원성마저 함락되자 조선과 명나라의 민심이 요동쳤다. 남원성 전투에서 3000명의 병력을 순식간에 잃은 명나라는 조선 못지않게 충격이 컸다. 전황을 전해들은 저장(浙江), 푸젠(福建), 광둥(廣東) 성 등 중국 동남부 연해안 지역의 중국인들은 피란을 걱정했…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게 대승을 거둔 왜군은 호남 내륙 유린을 본격화했다. 그해 8월 한가위 무렵, 진주와 구례를 분탕질한 일본 좌군(左軍)은 섬진강을 거슬러온 수군과 연합해 남원성으로 진격했다. 일본 우군(右軍)이 함양의 황석산성에서 백성들을 도륙…
지난주 경남 함양의 황석산성을 취재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저려옴을 느꼈다. 황석산(1190m)의 능선을 따라 설치된 산성을 찾아 오르는 길에 만난 ‘피바위’ 때문이었다. 성의 남문지(南門址) 근처 널따란 암석지대를 설명하는 입간판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성이 함락되자…
1597년 7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모처럼 큰 웃음을 터뜨렸다. 정식으로 조선 재침공을 명령한 지 5개월여 만이다. 히데요시는 측실인 요도 도노가 머무는 교토의 고하타산(木幡山) 기슭 후시미(伏見)성에서 칠천량 해전 승전 보고를 받았다. 고니시 유키나가 등 5명의 왜군 장수들이 공동…
“저 바다로 무식한 칼잡이놈(가토 기요마사)이 곧 건너온단 말이지…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의 최대 도시 오사카(大阪) 시를 상징하는 오사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 절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성이다. 히데요시는 이 성에서 임진왜란을 기획하고, 또한 정유재란을 명령했다. 기자는 성의 중심부인 천수각에 올라 사방을 둘러봤다. …
“전하, 소장이 얼굴이 색다른 신병(神兵)을 데리고 왔는데 소개하겠습니다.” 정유재란이 치열한 국면으로 치닫던 1598년 5월 26일. 선조 임금이 한양도성 인근에 주둔중인 명군 진영을 방문했다. 명군이 남해안 일대의 왜군을 공격하기에 앞서 한양에 머물면서 전열을 정비하던 때다. …
왜성은 임진왜란(1592∼1596년)과 정유재란(1597∼1598년) 중 경상도와 전라도의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총 28개(시기가 불분명한 왜성 제외)가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은 부산포에서 웅천 사이의 20개 지역에 1차로 왜성을 쌓았다. 주로 해안지역에 산재한 이 성들…
420년 전, 조선의 강토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명을 칠 테니 길을 내라(征明假道)” 했던 왜적의 임진년 1차 침공에 이은 2차 침략이었다. 남쪽 4도를 노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은 하늘을 찔렀다. 백성들은 귀를 잘리고 코를 베였다. 코 베는 왜적의 잔인무도함에 민초들은 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