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사람들이 자신의 끔찍함을/어떻게 견디는지//자기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어떻게 지우는지//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도/사라지지 않는다//흰색에 흰색을 덧칠/누가 더 두꺼운 흰색을 갖게 될까.’(‘캔들’에서) 시 ‘캔들’을 읽었다는 한 독자는 안미옥 씨(34)에게 인스타 …
문보영 씨(26)가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운영한 지 3개월째다. 최근 영상은 부유한 인근 동네를 구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급스러운 주택엔 ‘남의 현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인형뽑기 기계 속 눌려 있는 인형들엔 ‘나의 현실’이라는 소제목이 달렸다. 호기심을 돋…
김혜나 소설가(36)가 최근 낸 소설집 ‘청귤’(은행나무·1만2000원)에는 이런 인물이 있다. 지각, 조퇴, 결석을 반복하고 자꾸만 가출하는 여학생이다. “학교에선 상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어요. 반성문 쓰느라고. 가끔씩 들어가는 수업 땐 잠만 잤고요. 성적은 최악, 수…
‘이게 끝이면 좋겠다 끝장났으면 좋겠다’로 시작하는 시는 10페이지 넘게 계속된다. ‘가능세계’에선 이런 긴 시편들이 종종 눈에 띈다. 시인 백은선 씨(31)는 이 첫 시집으로 지난해 소설가 최은영 씨와 함께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제 시가 볼륨이 커서 쓰는 데 오래 걸려요.…
“은퇴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합니다.” ‘너무 나간 얘기인 것 같지만’이라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소설가 최진영 씨(37)의 답은 엄격했다. 이 시대에 왜 문학을 하는가에 대해서였다. “글을 쓴다는 건 젊은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뇌세포는 낡아갈 텐데, 너무나…
안희연 씨(32)는 최근 인터넷서점 예스24의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시인 부문 1위로 선정됐다. 3일 만난 그에게 소감을 묻자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겸손한 모습이지만 그는 3년 전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8000원…
전아리 씨(32)가 첫 책을 낸 지 10년째다. ‘등단’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건, 그가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문학출판사인 문학동네는 미등단 신인이었던 대학생과 파격적으로 출간 계약을 했고, 전 씨는 스물두 살에 장편과 단편집을 한꺼번에…
백수린 씨(36)는 올 초 문학과지성사가 주관하는 문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등단 10년 차 이하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백 씨는 최근 3년 새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젊은 소설가들을 위한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이름을 올렸던 터다. 그만큼 …
‘고디는 지 뱃속에다 새끼를 키우는 기라, 새끼는 다 자랄 때꺼정 지 어미속을 조금씩 갉아묵는다 안 카나, 그라모 지 어미 속은 텅 비게 되것제, 그 안으로 달이 차오르듯 물이 들어차면 조그만 물살에도 견디지 못하고 동동 떠내려간다 안 카나, 연지곤지 찍힌 노을을 타고 말이다, 그제사…
소설가 정지돈 씨(35)는 지난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다녀왔다.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작가로 선정돼서다. 소설가가 세계적인 건축전에 참여했다? 2일 만난 그에게 건축 관련 일은 단편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쓴 것뿐 아니냐고 짓궂게 묻자, “지난 1, 2년 동안 문예지보다…
시인이 되고도 박연준 씨(38)의 생활은 고단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등단의 기쁨은 잠깐이었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월세를 내기 위해 밥벌이를 멈추지 말아야 했다. 기계 부품을 다루는 잡지, 을지로의 인쇄소, 광촉매 시공업체 등 직장을 전전했다. “하나의 직업만 갖는 게 꿈이…
군대에서 시간을 보낼 방편이라곤 독서밖에 없었다. 책꽂이에 꽂힌 소설을 한 권 한 권 읽어갔다. 억지로 읽는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어느 밤부터인가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다. 종일 여럿이 함께하는 시간이었지만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마음에 지칠 무렵이었다. 그가 읽은 소설 속 사…
“꿀맛이 왜 달콤한지 알아요? 꾼 맛도 아니고 꾸는 맛도 아니어서. 미래니까요!”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꿈꾸는 사람”이라고 답하면서 오은 시인(36)은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이 기발한 언어유희는 그의 시집 ‘유에서 유’의 서문이자 오은 시만의 매력이다. 시인에게 당신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저녁, 아버지는 “시험을 보지 말고 절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취한 것도, 아들의 미래를 비관한 것도 아니었다. 고단함이 예정된 보통사람의 인생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었다. 인생을 미리 살아보지 않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조언이 들릴 리 …
정세랑 씨(34)는 최근 ‘씀’이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자신의 단편을 게재했다. 글감이 주어지면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글쓰기를 하는 앱이다. 종이로 된 문예지도, 출판사가 운영하는 블로그도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하는 앱에 작품을 발표한다? 정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