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붉은 옷을 입고 스스로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일컬었는데, 적진을...
‘3·1운동의 주요 유적지에 기념비를 세워 그 거룩한 정신을 만대의 후세까지 길이 받들어 드높이려 한(이희승 박사의 비문) 것은….’ 동아일보 1972년 8월 17일자 5면에 게재된 기사의 한 구절로 강원 횡성에 세워진 ‘3·1운동 기념비’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념비는 동…
‘단군은 우리 민족의 종조(宗祖)이시오, 우리 근역(槿域)에 건국하신 제일인(第一人)이시오, 가장 신성하신 대위인(大偉人)이시라.…(중략)…숭엄하신 단군존(檀君尊)○을 구하야 독자와 공히 배(拜)하려고 자(玆)에 본사는 현상(懸賞)하야 감히 존(尊)○○을 모집하오니 강호형제(江湖兄弟)…
“조선의 현 상황이 유유히 천렵이나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미 남원, 담양…
‘우리는 대한독립광복을 위해 생명을 제공함은 물론 우리가 일생의 목적을 달성치 못할 시는 자자손손 계승해 원수인 일본을 완전 구축하고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 절대 불변하고 서로 힘을 모을 것을 천지신명에게 맹세함.’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15년 7월, 대구 …
“어제(4월 2일) 울산 언양면에서 소요가 있어 발포. 사상 3명.”(4월 3일 보고) “동일(4월 4일) 울산 하상면에서 소요 발생.”(4월 5일 보고) “어제(4월 5일) 울산 하상면 소요에서 수모자(首謀者) 압송 도중 청년들이 탈취하려고 폭행해 발포. 2명 즉사, 8명 부…
경기 평택시는 최근 국가보훈처로부터 평택지역 독립유공자들이 새롭게 정부 포상을 받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진위군 북면 봉남리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만수 등 9명이다. 이들의 이름은 현덕면 평택호 옆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조형물’ 독립유공자 명단에 올려질 예정이다.…
민족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주동산. 경기 연천군 청산면 장탄리에 위치한 이곳을 이달 7일 찾았다. 차량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찾기 힘든 정주동산 입구에는 높이 3.5m의 탑 3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3·1운동을 이끈 33인 민족대표…
‘어제 (경남) 밀양에서는 조선어를 알고, 조선인 처를 둔 일본인을 살해한다는 협박이 있어 일본인 자산가 4, 5명이 부산으로 도피했다.’ 1919년 3월 13일 오후 7시 반, 경남 장관은 조선총독에게 이런 내용의 긴급 전보를 보냈다.(‘소요사건에 관한 도장관 보고철’) 돈 …
지난달 28일 찾은 충남 청양군 화성면 수정리 물안이마을 입구엔 태극기 열두 기가 날리고 있었다. 수정리(水汀里)가 우리말로 옮겨진 물안이마을은 주민이 50명도 채 안 되는 곳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열두 명의 애국지사가 나왔다. 열두 기의 태극기는 이들을 상징한다. 올해 3·1운동 …
“(1919년) 3월 초순 이 지역 사람들이 독립을 외치고 난 후 56명이 헌병대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곳으로 갔다. 그들이 헌병대 안으로 들어서자 대문이 굳게 닫혔다. 헌병들이 담 위로 올라가더니 들어왔던 사람들 모두를 쏘아 죽였다. 그러고는 내려와서 죽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
1919년 경성에서 3·1운동이 시작된 날 동해안에 위치한 함경남도 원산(현 강원도)에서도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조선헌병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작성한 ‘조선소요사건경과개람표’(1919년 3월 1∼31일)에 따르면 이날 원산은 경성(4000명) 다음으로 많은 인원인 25…
경기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에서 군중들이 모여 헌병주재소를 습격한 날은 1919년 4월 1일이었다. 여주의 첫 대규모 만세 시위였다. 이웃한 이천의 마장면에서 3월 30일 벌어진 만세운동이 이포리 시위가 일어난 날까지 사흘 동안 이어진 셈이다. 마장면 시위 역시 이천에서 일어난 첫 만세…
1919년 3월 중순, 33인 민족대표들의 뒤를 이어 비선(2선) 조직원으로 활동하던 기독교 전도사 이규갑(1888∼1970)은 일제 경찰을 피해 조카의 집에 은신 중이었다. 당시 일경과 헌병은 3·1운동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33인 민족대표들과 3월 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시위를 …
‘조선독립운동자 검거.’ 1921년 5월 12일 일제 육군성은 이런 제목의 대외비 문서를 내각총리대신 앞으로 보냈다. 2년 전 일어났던 독립운동과 유사한 활동을 계획하던 조선인들을 체포했다는 보고였다. 이틀 뒤 동아일보는 ‘제2차 독립운동을 계획하던 김두현 외 12명이 경남경찰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