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금강 하구언을 흐르는 강물은 도도했다. 길게 펼쳐진 강은 ‘서천(舒川)’이라는 지명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옛 부두에서 10여 분 걸어 내려오면 한영학교(漢英學校) 터가 있다. 지금은 개인 소유의 기와집이 자리 잡은 이곳에서 100년 전 서천의 만세운동을 이끈 젊은이들이…
“3·1운동은 일제의 지배를 거부한 비타협·불복종 운동으로, 19세기 후반 가까스로 제국의 반열에 오른 ‘마지막 근대 제국’ 일제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해외 학자 7명 등 국내외 연구자 30여 명이 모여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
‘금일 오등(吾等)이 독립운동을 전개함은 조선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를 절대 지지하고 중앙에 호응하여 완전한 독립 주권국을 전취(戰取)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등은 정의를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며 대한독립을 한사코 전취할 것을 맹세하고 이에 서명 날…
‘경상북도에서 불령자(일제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의 망동 중에 가장 맹렬했던 영해·영덕지방을 시찰하고 돌아온 경무부장의 말을 들은즉 영해·영덕지방의 망동소요는 대단히 맹렬했으나 요새는 모두 종식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19년 5월 31일…
강원 원주시 봉산로 원주시역사박물관 중앙전시홀에선 ‘3·1운동과 원주’ 특별전시가 한창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원주 곳곳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의 함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을 선보이는 전시회는 이달 30일까지 계속된다. 박물관은 면리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만세운동…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우리의 열화 같은 의지를 누가 감히 막을 수 있었으랴.’(안동 삼일운동 기념비) 경북 안동은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탈한 갑오변란 직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이 일어난 곳이 안동이었다. 공주 유생 서상…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이틀 전인 2월 27일 전북 임실군 천도교 임실교구 전도실(운암면 지천리). 동학농민혁명 당시 북접(北接) 대접주로 맹활약한 최승우, 독립선언서 서명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된 박준승 양한묵 두 제자를 천도교 측 대표로 천거한 동학 원로 김영원, 공주 우…
일본이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침략의 마수를 뻗치던 1886년 7월 25일 전남 완도군 소안도. 섬 주민 200여 명이 맹선리 짝지에 집단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가옥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이 난 지 2개월 뒤 현장을 조사한 일본영사관 직원은 ‘주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카무라와 그…
‘성격은 강렬하야 애국심이 강하고 기미만세 때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 동아일보 1946년 9월 10일자에 독립운동가 홍진(1877∼1946·사진)의 별세 소식이 실렸다. 그는 1926년 상하이임시정부 수반인 국무령을 지냈고, 임시정부의 의회 기능을 했던 …
“기생들은 화류계 여자라기보다 독립투사였다.” 1919년 9월 부임한 일제의 치안 책임자 지바 료는 ‘조선독립운동비화’라는 책에서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독립사상을 불러일으키는 기생들이 있는 한 조선의 치안 유지가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3·1운동 당시 ‘애국 기생’들이…
‘반만 해를 맥맥이 이어 슬기로 다듬고 죽음으로 지켜온 내 조국, 왜구 너희
“만세 부른 백성들아/내 말 새로 들어보라/독립 만세 불러놓고/기정(사실을 속임)은 무슨 일인고/…같이 돈심(마음이 도타움) 못할진대 시작하지나 말았으면/불쌍한 백성들도 원혼이나 아니 되고/활달한 백성들은 고생이나 덜 것을/그중에 우리 시여(독립운동가 김승태의 자) 흥을 내어 즐기더니…
‘아 동포 제군이여! 신성한 단군의 자손으로 반만년 동방에서 웅비한 우리 조선 민족은 경술년이 원수로다. 금수강산이 식민지도(植民地圖)로 출판되고 신성한 자손은 노예의 민적(民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치욕을 당하고 무슨 면목으로 지하의 조상님들을 뵙고 어찌하여 세계의 다른 나…
행주나루는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서 경기 고양군 지도면 행주리(현재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로 건너가던 배들의 선착장이었다. 지금은 역사적인 유물이 된 행주나루터를 3일 방문했을 때 몇 척의 배가 보였다. 어선이었다. 어부들은 이 배들을 이용해 자연산 민물장어, 참게, 숭어, 황복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