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지방 붉은 귤나무, 겨울 지나도 여전히 푸른 숲을 이루네.어찌 이곳 기후가 따뜻해서랴, 스스로 추위 견디는 본성이 있어서지.귀한 손님께 드릴 수 있으련만 어쩌랴, 첩첩이 길 막히고 아득히 먼 것을. 운명은 그저 만나기 나름이려니 돌고 도는 세상 이치를 억지로 좇을 순 없지.괜히…
옛 친구들 고관대작과 사귀느라 발길 뚝 끊었으니 문밖은 그야말로 참새 그물을 놓아도 될 지경.내 진작부터 빈둥거렸지만 일하는 아이마저 더 게을러져 비 온 뒤 봄풀이 곱절이나 늘어났네. 故人通貴絶相過, 門外眞堪置雀羅. 고인통귀절상과, 문외진감치작라. 我已幽慵僮更懶, 雨來春草一番多. 아이…
《벼슬하느라 객지를 떠도는 자만이 만물의 변화에 쉬 놀라기 마련.구름과 노을은 새벽 바다에 피어나고 매화와 버들은 봄 강을 건너고 있다.따스한 봄기운에 꾀꼬리 울음 잦아지고 맑은 햇살에 부평초는 푸름을 더해간다.홀연 그대가 읊는 옛 가락 듣노라니 돌아가고픈 마음에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
《달은 이지러져도 그 빛 변함이 없고 보검은 부러져도 그 강함이 그대로지.기운 달은 빛이 쉽게 차오르고 부러진 보검은 주조하면 다시 좋아지지.권세가 산을 압도할 듯 막강해도 지사의 마음을 굴복시키긴 어려운 법. 대장부는 원래 지조가 있으니 죽을지언정 구차하게 살지는 않는다네.(月缺不…
꽃잎 하나 날려도 봄빛이 줄어들거늘 무수히 휘날리니 울적해지는 내 마음.눈앞을 스치는 떨어지는 꽃잎 보며 몸 상하는 건 개의치 않고 술 마구 들이킨다.강가 작은 집엔 물총새가 둥지 틀고 동산 옆 높은 무덤엔 기린 석상이 나뒹군다.세상 이치 따지고 보면 즐기는 게 당연하니 헛된 명성에 …
높다란 대울타리 속 친한 짝은 없지만 시끌벅적 닭 무리에서 저 홀로 빼어나다.머리 숙이면 붉은 볏이 떨어질까 두렵고 햇살 쬐면 하얀 깃털 녹아날까 걱정일세.가마우지는 털 빛깔이 천박한 듯싶고 앵무새는 목소리가 교태스러워 싫어한다.바람결에 울음 울며 무엇을 생각할까. 아득히 푸른 들, …
골짜기마다 나무들 하늘을 찌르고 뭇 산엔 두견새 소리 울려 퍼지리.산중 밤새도록 비가 내리면 나뭇가지 끝에선 좌르르 샘물이 쏟아지리.그곳 여자들 무명베 짜서 세금 바치고 남자들은 토란밭 때문에 다툼이 잦을걸세.옛날 문옹이 그곳을 교화했다지만 선현의 업적에만 마냥 기대진 마시게.(萬壑樹…
해님 부끄러워 소매로 얼굴 가리고 봄날 시름겨워 화장도 마다하네.진귀한 보물은 쉽게 구해도 낭군 마음 얻기는 너무 어려워베갯머리 가만히 눈물 흘리고 꽃밭에서 남몰래 애를 태우네.송옥같이 멋진 남자도 넘볼 수 있는 그대, 떠나버린 왕창을 원망할 건 없잖아.(羞日遮羅袖, 愁春懶起粧. 易求…
인생 도달하는 곳 무엇과 같을까.기러기가 질척거리는 눈밭을 밟는 것과 같으리.진흙 위에 어쩌다 발자국 남긴대도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동서쪽을 가늠하랴.노승은 이미 죽어 탑 속에 들었고 벽은 허물어져 우리가 남긴 시는 찾을 길 없구나.지난날 험한 산길 아직 기억하는지? 길은 멀고 지친 …
어지러이 늘어진 버들가지 누레지기도 전에 따스한 봄바람 덕에 기세 한껏 떨치고 있다. 버들솜 날리며 해와 달 덮을 줄만 알았지세상에 차가운 서리가 있다는 건 알지 못하네.(亂條猶未變初黃, 倚得東風勢便狂. 解把飛花蒙日月, 不知天地有淸霜.)―‘버들을 읊다(영류·詠柳)’ 증공(曾鞏·101…
연 지방엔 풀들이 푸른 실처럼 가늘겠지만이곳 진 지방 뽕나무는 초록가지를 낮게 드리웠네요.당신이 간절하게 집 생각하실 때 저 역시 애간장이 다 녹아나요. 알지도 못하는 봄바람이여, 무슨 일로 비단 휘장으로 들어오는지?(燕草如碧絲, 秦桑低綠枝. 當君懷歸日, 是妾斷腸時. 春風不相識, 何事…
좋은 비 때를 아는 듯 봄 되자 천지에 생기를 주네.바람 타고 몰래 밤에 찾아와 부슬부슬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신다.들길은 온통 구름으로 캄캄하고 강에 뜬 고깃배 불빛만 환하다.새벽이면 붉게 젖은 곳 보게 되리니, 꽃들이 금관성에 흐드러져 있을 테지.(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캄캄한 숲 풀들이 놀란 듯 흔들대자 장군은 한밤중에 활시위를 당겼지.날 밝아 흰 화살 깃 찾아봤더니 바윗돌 모서리에 박혀 있었네.(林暗草驚風, 將軍夜引弓. 平明尋白羽, 沒在石H中)―‘새하곡(塞下曲)’ 제2수·노륜(盧綸·739∼799)
옛사람 황학 타고 이미 떠났고 이곳엔 덩그마니 황학루만 남아 있네.황학은 가버린 후 돌아오지 않고 흰 구름만 천년토록 하릴없이 흐른다.맑은 물엔 반들반들 한양의 숲 어른대고 향초는 더북더북 앵무섬에 무성하다.해는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쯤일까. 강 위에 핀 물안개에 마음만 스산하네.(昔人…
삼진으로 에워싸인 장안 궁궐, 자욱한 안개 속에서 촉 땅을 바라보네.그대와 작별하는 이 마음, 우린 다같이 벼슬 때문에 객지를 떠도는 신세.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에 있대도 이웃 같으리.이별의 갈림길에 선 우리, 아녀자처럼 눈물로 수건 적시진 마세.(城闕輔三秦, 風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