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이랑 크기의 네모난 연못이 거울처럼 펼쳐져 /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그 안에 일렁인다.묻노니 이 연못은 어찌 이리도 맑을까. / 발원지에서 쉬지 않고 물이 흘러들기 때문이지. (半畝方塘一鑒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책을 읽다 든 생각(觀書有感·제1수…
우리 집 벼루 씻는 연못가에 매화나무, 꽃 핀 자리마다 옅은 먹 자국.사람들이 그 고운 빛 자랑하지 않아도 맑은 향기 오롯이 온천지에 넘쳐나네.(吾家洗硯池頭樹, 箇箇花開淡墨痕. 不要人誇好顔色, 只留淸氣滿乾坤.)―‘먹으로 그린 매화(墨梅)’ 왕면(王冕·1310∼1359)
시각을 알리는 차가운 북소리 새벽으로 향해 갈 때/맑은 거울 앞에서 노쇠한 모습 비춰본다. 창 너머 댓잎은 바람에 놀란 듯 흔들리고/문을 여니 흰 눈이 온 산에 가득하다. 눈발 날리는 깊은 골목은 더없이 고요하고/눈 쌓인 너른 정원은 마냥 한갓지다. 묻노니 그대는 은자 원안(袁安)의 …
섣달 농가의 술이 탁하다 비웃지 마소. 풍년이라 손님 드릴 닭과 돼지고기 넉넉하다오.산 첩첩 물 겹겹, 길이 없으려니 했는데 짙은 버들 환한 꽃, 마을이 새로 펼쳐지네.피리와 북소리 이어지니 봄 제사 곧 있겠고 차림새 소박한 걸 보니 옛 풍습이 남아 있네.이젠 자주 한가로이 달빛 속을…
금년 오늘밤이 끝나고 나면 내년 내일이 다가오리니.추위는 이 밤 따라 떠나가고 봄날이 새벽같이 도래하겠지.천지의 기운이 바뀌는 중에 낯빛도 은연중에 좋아질 테지.봄기운,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어느새 뒤뜰 매화에 스며들었네.今歲今宵盡, 明年明日催. 금세금소진, 명년명일최寒隨一夜去, 春逐…
어머니의 자식 사랑 끝이 없어서 아들이 때맞춰 돌아오자 너무 기뻐하시네.겨울옷은 촘촘하게 바느질하셨고 보내준 편지엔 아직도 먹물 자국 선명하네.만나자마자 야위었다 걱정하시고 날 불러 고생한 걸 물어보시네.송구한 마음에 우물쭈물 얼버무리며 풍진 세상의 고생살이 차마 말씀 못 드렸지.(愛…
당신은 내게 돌아올 날을 묻지만 아직은 기약이 없다오.이 가을 파산에는 밤비가 내려 연못물 그득 넘쳐나네요.어느 때면 서창에 앉아 오순도순 촛불 심지 다듬어가며비 내리는 파산의 이 밤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런지.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군문귀기미유기, 파산야우창추지何當共剪西窓燭,…
말에서 내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며 어디로 가려냐고 물었더니뜻을 못 이루어 남산 기슭으로 돌아간다는 그대의 대답.더 이상 묻지 않으리니 그냥 떠나시오. 그곳엔 흰 구름이 끊이지 않을 테니.(下馬飮君酒, 問君何所之. 君言不得意, 歸臥南山수. 但去莫復問, 白雲無盡時.) ―‘송별(送別)’…
왜 청산에 사느냐 내게 묻기에, 그저 웃을 뿐 대답 않으니 마음 절로 느긋하다.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 곳, 여기는 별천지, 인간 세상이 아니라네.(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I然去, 別有天地非人間.)―‘산중문답(山中問答)’ 이백(李白·701∼762) 시제는 ‘산…
거센 바람, 드높은 하늘, 원숭이 울음 구슬프고 맑은 강가, 흰 모래톱, 새떼들이 날아든다./가없는 숲엔 우수수 낙엽이 지고 끝없는 장강 도도히 물결 흐른다./만리타향 슬픈 가을에 나그네 신세, 평생토록 병치레하다 홀로 누대에 오른다./고난으로 하얘진 귀밑머리 더없이 한스럽고 노쇠해져…
뜰 안의 진기한 나무 한 그루, 잎 푸르고 꽃들은 만발하였네. 가지 당겨 그 꽃 꺾어 그리운 이에게 보내려는데 꽃향기 옷자락에 넘쳐나지만 길 멀어 그곳으로 보낼 수 없네. 이 꽃이 뭐 그리 소중하랴만 오랜 이별 마음으로 느낄 순 있으리. (庭中有奇樹, 綠葉發華滋. 攀條折其榮, …
동쪽 정원 푸른 소나무, 무성한 초목에 그 자태가 묻혀 있더니 된서리에 초목들이 시들해지자 우뚝하니 높은 가지 다 드러나네. 숲에 붙어 있으면 아무도 몰라보지만 저 홀로 서 있으면 다들 경탄해 마지않지. 술병 든 채 차가운 가지 만져도 보고 이따금 멀찍이서 바라도 보네. 우리네…
어떤 자리서 술을 잊지 못할까. 하늘 끝 헤어졌다 다시 만나 옛정을 나눌 때지. 청운의 꿈은 다들 이루지 못한 채 흰머리 된 걸 서로가 놀라워하지. 이십 년 전 이별한 후 아득히 삼천 리 밖을 떠돌았으니 이럴 때 술 한 잔 없다면 무슨 수로 지난 평생을 다 풀어내랴. (何處難忘…
걸상을 옮겨가며 맑은 햇빛 즐기노라니 느긋하니 세상 근심 사그라지네. 줄에 매달린 거미는 내려왔다 또 올라가고 다투듯이 참새들은 떨어졌다 다시 나네. 서로 어울려 참새들 찬 대숲으로 들어가고 줄 거둔 거미는 저녁 대문에 붙어 있다. 고즈넉한 이 정경 그 누가 알랴. 이끼 풀빛만 …
친구가 닭과 기장밥 마련해 놓고 시골집으로 나를 초대했네. 푸른 나무들 마을 주변에 몰려 있고 푸른 산은 성 밖으로 비껴 앉았다. 창문 열어 채마밭 마주한 채 술잔 들고 두런두런 농사 이야기./중양절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와 국화꽃 감상하리라. (故人具계黍, 邀我至田家. 綠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