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같은 시문을 지어온 60년, 누가 그댈 죽음의 길로 몰아 시선(詩仙)이 되게 했나. 떠도는 구름처럼 얽매이지 않았기에 이름은 거이(居易), 무위자연의 삶을 좇았기에 자가 낙천(樂天). 어린애조차 그대의 ‘장한가(長恨歌)’를 읊어대고, 오랑캐도 ‘비파행(琵琶行)’을 부를 줄 알았…
숯 파는 노인, 남산에서 나무 베어 숯을 굽는다./얼굴은 온통 재와 그을음,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에 새까만 열 손가락./숯 팔아 번 돈은 어디에 쓰나. 몸에 걸칠 옷과 먹을거리에 쓰지./불쌍하구나. 홑옷을 걸치고도 숯값 떨어질까 걱정하며 추워지길 바라다니. (중략)기세등등 말 타고 온 …
대지는 백설로 뒤덮이고 바람은 찬데, 주먹만 한 눈송이가 공중에 흩날린다.도연명이 웃다 자빠지겠소. 잔 그득한 술을 마시지 않겠다시니.그대 거문고 어루만져 봐야 부질없고, 버드나무 다섯 그루 심은 것도 헛된 노릇.머리 위 망건도 괜히 쓴 것이려니, 내 존재가 그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여산 안개비와 전당강(錢塘江)의 물결, 와 보지 않았을 땐 온갖 여한이 남았었지. 와서 보고 나니 별다를 게 없구나. 여산 안개비와 전당강의 물결! (廬山煙雨浙江潮, 未到千般恨不消. 到得還來別無事, 廬山煙雨浙江潮.) ―‘물결을 바라보다(관조·觀潮)…
가난한 집안이라 비단옷은 알지도 못하고, 좋은 중매인에게 부탁하고 싶어도 마음만 더 상하네.격조 있고 품위가 있다 한들 누가 알아주리오. 다들 요새 유행하는 특이한 차림이나 좋아하는걸.열 손가락 바느질 솜씨는 대놓고 자랑할지언정, 두 눈썹 예쁘게 그려 남과 겨루진 않지.한스럽구나. 해…
강남 일대 강산이 전쟁에 휘말렸으니, 백성들이 무슨 수로 즐거이 나무하고 풀을 베리오.권하건대 그대여 봉작(封爵)에 대해선 말을 마시오. 장수 하나가 공을 세우면 만 명이 마른 해골로 변한다오.(澤國江山入戰圖, 生民何計樂樵蘇. 憑君莫話封侯事, 一將功成萬骨枯.) …
하서위(河西尉)를 맡지 않은 건, 처량하게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이었지.늙은이라 분주히 오가는 게 걱정스러웠는데, 율부(率府)의 일은 그런대로 한가롭지.술 즐기려면 적은 녹봉이나마 꼭 있어야 하고, 거리낌없이 노래하려면 이 조정에 기댈 수밖에.고향으로 돌아갈 꿈 사그라진 지금, 고개…
야광배에 담긴 달콤한 포도주, 마시려는 순간 비파 소리 흥을 돋운다.술 취해 모래밭에 눕더라도 비웃지 마라. 예부터 전쟁터에서 몇이나 살아 돌아왔더냐.(葡萄美酒夜光杯, 欲飮琵琶馬上催. 醉卧沙場君莫笑, 古來征戰幾人回.)―‘양주의 노래(양주사·涼州詞)’ 왕한(王翰·생졸미상 당 중엽)
그대에게 술 따르니 그대 마음 푸시게. 사람 마음은 파도처럼 쉼 없이 뒤바뀐다네.백발 되도록 사귀었대도 칼을 빼들 수 있고, 출세한 선배가 갓 벼슬길에 나선 후배를 비웃기도 하지.초록 풀은 가랑비 덕분에 촉촉해지지만, 꽃가지는 움트려는 순간 찬 봄바람에 시달리기도 한다네.세상사 뜬구름…
물빛처럼 번뜩이는 병주(幷州) 과도, 눈보다 고운 오 지방 소금, 갓 익은 귤을 까는 섬섬옥수.비단 장막 안은 이제 막 따스해지고, 향로에선 쉼 없이 향훈이 번지는데, 마주 앉아 여인은 생황(笙簧)을 연주한다.낮은 목소리로 묻는 말. “오늘 밤 어느 곳에서 묵으실는지? 성안은 이미 야…
새해 들자 더욱 간절해진 고향 생각, 하늘 끝에서 외로이 눈물짓는다.늘그막이라 매사 남보다 뒤지는 터, 봄조차 이 몸보다 먼저 고향에 가 있으리.산속 원숭이들과 아침저녁을 함께 보내고, 강 버들과는 바람과 안개를 같이 나누지.장사부(長沙傅)처럼 멀리 쫓겨난 처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한기 감도는 외딴 마을의 저녁, 사방에서 들리는 스산한 바람 소리.계곡물 깊어 눈은 쌓일 겨를 없고, 산은 얼어 구름조차 꿈쩍하지 않는다.갈매기와 백로가 날아도 구별하기 어렵고, 모래톱과 물가도 분간되지 않는다.들판 다리 곁엔 매화나무 몇 그루, 온 천지에 휘날리는 하얀 눈발.(寒色孤…
큰바람 일어나자 구름이 흩날리누나.온 세상에 위세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나니,어떻게 하면 용맹한 군사를 얻어 사방을 지킬는지.(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鄉, 安得猛士兮守四方.)―‘바람의 노래(대풍가·大風歌)’ 유방(劉邦·기원전 256년∼기원전 195년)
잔설처럼 하얀 비단 조각으로, 잉어 한 쌍 만들었으니내 맘속 일을 알고 싶다면, 그 배 속의 편지를 읽어보셔요.(尺素如殘雪, 結為雙鯉魚. 欲知心裏事, 看取腹中書.)―‘흰 비단 물고기를 만들어 친구에게 주다(결소어이우인·結素魚貽友人)’·이야(李冶·약 730∼784)
저물녘 부슬부슬 비 내리는 강마을,이 밤 녹림호객(綠林豪客)이 내 이름 듣고 알은체한다.다른 때라도 내 이름은 숨길 필요 없겠네.지금은 세상 절반이 다 그대 같은 도적이려니.(暮雨瀟瀟江上村, 綠林豪客夜知聞. 他時不用逃名姓, 世上如今半是君.)―‘정란사 마을에서 묵다 만난 밤손님(정란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