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를 애도한다는 ‘도망’이란 말이 아내의 죽음을 애달파 하는 시의 전용 명사가 된 것은 서진(西晉)시대 반악(潘岳)의 ‘도망시(悼亡詩)’부터였다. 우리 한시 중에선 조선 후기 심노숭(沈魯崇·1762∼1837)의 도망시가 특히 마음을 울린다.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동갑내…
알랭 코르노 감독의 ‘세상의 모든 아침’(1991년)에선 17세기 프랑스의 비올라 다 감바 음악가였던 생트 콜롱브와 그의 제자 마랭 마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레는 엄격한 콜롱브에게 가르침을 거절당하자 콜롱브의 오두막집 아래 숨어 연주를 엿듣는다. 같은 세기 조선의 거문고 명인 김성…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에 다림질에 대한 작품이 있다.(시집 ‘충만한 힘’ 중 ‘다림질을 기리는 노래’) 발해 시인 양태사(楊泰師)에게도 옛날의 다림질이라 할 다듬이질에 대한 시가 있다.758년 사신으로 일본에 간 시인은 잠 못 이루던 어느 가을밤 이웃의 다듬이질 …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2024년)에서 주인공 히라야마는 과거 부유한 집안 출신의 사업가였던 것 같지만, 지금은 가족과도 인연을 끊고 화장실 청소를 업으로 살아간다. 시한부 암환자인 남자가 히라야마에게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며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라…
1488년 최부(崔溥·1454∼1504)는 제주도에서 출발한 배가 망망대해에 표류하여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 동남부 해안에 도달했지만 최부 일행은 왜구로 오인받는 등 다시 위기를 겪고 육로를 통해 겨우 귀국했다. 최부는 그 사연을 ‘표해록(漂海錄)’에 남겼다. …
소식(蘇軾·1037∼1101)은 황주(黃州) 유배 시절인 임술년(1082년) 가을 적벽강(赤壁江)에서 뱃놀이를 한 뒤 ‘적벽부(赤壁賦)’를 남겼다. 조선시대 박은(朴誾·1479∼1504)은 임술년(1502년)이 돌아오자 이행(李荇), 남곤(南袞)과 함께 한강에서 소식의 뱃놀이를 재연하…
소식(蘇軾·1037~1191)은 황주(黃州) 유배 시절인 임술년(1082년) 가을 적벽강(赤壁江)에서 뱃놀이를 한 뒤 ‘적벽부(赤壁賦)’를 남겼다. 조선시대 박은(朴誾·1479~1504)은 임술년(1502년)이 돌아오자 이행(李荇), 남곤(南袞)과 함께 한강에서 소식의 뱃놀이를 재연하…
한시에선 일찍부터 잔치 뒤의 공허감을 노래해 왔다. 신하들과의 연회가 끝난 뒤 한나라 무제는 “환락이 다하면 슬픈 감정이 많아지니, 젊음의 시간 얼마 안 되니 늙는 걸 어찌할까(歡樂極兮哀情多, 少壯幾時兮奈老何).”(‘秋風辭’)라고 읊은 바 있다. 한나라 말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년)에서 일본인처럼 행세하는 악독한 조선인 코우즈키는 식사 때만큼은 평양냉면을 즐긴다. 조선시대 장유(張維·1587∼1638)가 냉면을 먹고 쓴 시는 다음과 같다. 냉면을 읊은 한시로는 두보의 ‘괴엽냉도(槐葉冷淘)’가 유명하다. 홰나무 잎의 녹색 즙을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2016년)에서 주인공 료타의 대사를 통해 태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지붕을 밧줄로 동여맸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린다(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폭풍우로 지붕이 날아간 일을 읊은 한시로 두보의 다음 작품이 유명하다. 시인은 안사의 난(安…
조선 후기 농부의 딸로 태어난 향랑(香娘)은 남편에게 소박을 맞고 돌아와 계모에게 시달리다가 숙부 집에 의탁하게 된다. 숙부의 개가(改嫁) 권유를 거절하고 다시 시댁을 찾아갔지만 남편은 박대하고 시아버지마저 개가를 권하자 결국 강에 몸을 던진다. 향랑의 사연은 조정에까지 알려져 열녀(…
북경을 다녀온 사신들에 의해 계문란의 사연은 조선에까지 알려졌다. 남편이 피살된 뒤 청나라 사람에게 팔려 심양으로 간 강남 여인의 기구한 운명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쓴 다음 시가 특히 유명하다. 시인은 청나라에 가본 적조차 없지만 김석주가…
북경으로 가는 조선 사신들은 산해관을 지나 풍윤현으로 가는 길에 진자점(榛子店)을 지나게 된다. 명말청초에는 여성이 건축물의 벽에 쓴 제벽시(題壁詩)가 많았다고 하는데, 1680년 서장관(書狀官) 목림유(睦林儒)는 우연히 진자점 주점 벽에 적혀 있는 시 한 수를 읽게 된다. 시에 덧붙…
한시에서 사자를 실제 보고 읊은 경우는 드물다. 한자문화권 안에서 접하기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시에서도 최치원처럼 사자탈 공연을 보고 쓴 것이나(‘鄕樂雜詠’) 그림 속 사자에 대해 읊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자에 대한 한시를 찾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구한말 역관 김득련(金…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인도로 가는 길’(1984년)에서 닥터 아지즈는 식민지 인도를 방문한 영국 여성 아델라 퀘스티드를 환대했지만, 마라바르 동굴에 안내한 일이 화근이 되어 큰 고초를 겪는다. 조선시대 지식인 역시 상국(上國)인 중국 사신들을 대접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