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서 자식 잃은 슬픔을 적은 작품을 ‘곡자시(哭子詩)’, ‘도자시(悼子詩)’, ‘실자시(失子詩)’라고 부른다. 당나라 한유는 친구 맹교를 위해 장편의 ‘실자시’를 써준 적이 있다.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맹교는 이 무렵 어린 세 자식을 연이어 잃고 비탄에 빠져 있었다. 스스로…
한시에서 사형 전 마지막 심경을 적은 시를 임형시(臨刑詩)라고 한다. 임종시(臨終詩)나 절명시(絶命詩)와 달리 강제된 죽음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이 있다. 구한말 의병장 이강년(1858∼1908)은 다음과 같은 임형시를 남겼다. 시인은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가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킨 뒤…
전통 사회에서 50은 중요한 숫자였다. ‘주역’에서 천지 만물을 상징하는 숫자가 50으로, 점을 칠 때는 하나를 빼고 49를 썼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2021년)에서도 50이라는 숫자가 두드러진다. 아서 하위처 주니어가 창간한 ‘프렌치 디스패치’란 잡지가 5…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1956년)에서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를 따라 세계 일주를 한 하인 파스파르투처럼, 구한말 역관 김득련(1852∼1930)도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을 수행해 세계 일주를 했다. 조선 사절단은 아시아와 미국, 유럽을 거쳐 두 달여 만에 러…
남아선호 풍조가 강했던 전통사회에서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낸 한시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나라 백거이는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몇몇 시에 담았다. 시인이 혹독한 정치적 시련을 겪던 마흔다섯에 아라가 태어났다. 천진난만한 딸이 자신의 발을 껴안고 놀고 옷을 베…
한시에서 우정은 사랑보다 즐겨 다룬 주제였다. 하지만 여성들의 우정을 읊은 한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수 신분인 기생의 우정은 더욱 그렇다. 1879년경 팔도 각지에서 온 여덟 명의 기생은 한양에서 수계(修禊) 모임을 갖고 우정을 기리는 시를 남겼다. 월하(1860∼?)의 시는 다음과…
명나라 말기 기생 유여시(1618∼1664)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북경으로 가는 연인 진자룡을 떠나보내며 다음 시를 썼다. 시인의 본명은 양애.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재상의 첩을 거쳐 기생으로 팔려가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체격이 자그마하고 가냘팠지만 기백이 대단했고, …
리안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1995년)에서 요리사인 주 선생은 딸들에게 먹일 저녁 메뉴로 만두를 준비한다. 조선시대 시골 선비 이응희(1579∼1651)는 며느리가 빚은 만두로 아침을 먹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시인이 쓴 280수에 달하는 연작시 ‘만물편(萬物篇)’ 음식류(飮食類)…
그들이 개구리를 먹은 것은 미식(美食)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나라 한유(768∼824)는 벗 유종원이 남방으로 좌천된 뒤 개구리를 먹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썼다. ‘하마(蝦蟆)’는 개구리의 일종으로 두꺼비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 무렵 시인 역시 조주(潮州)로 좌천돼 …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워터프론트’(1954년)에서 주인공 테리(말런 브랜도)는 악랄한 부두 노조 지도자의 ‘오른팔’인 형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 조선 시대 문신 심의(1475∼?)도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형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다. 다음은 시인이 형을 추모하…
테리 길리엄 감독의 ‘피셔 킹’(1993년)에서 패리(로빈 윌리엄스)는 충격적 사건을 겪은 후 자신이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 나선 기사라는 환상에 빠져든다. 연암 박지원(1737∼1805)과 동시대 인물인 이언진(1740∼1766)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뒤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화자찬을…
봄날 꽃이 눈부시다. 하지만 꽃비 내린 다음 날 바닥에 널브러진 꽃잎을 보노라면 서글퍼진다. 조지훈 시인은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고 썼다(‘낙화’). 장률 감독의 영화 ‘당시’(2004년)에도 유사한 내용을 읊은 당나라 맹호연(689∼740)…
봄이 왔다. 남쪽에선 벌써 살구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예로부터 살구꽃은 봄, 고향, 술집 등을 상징하는 꽃으로 시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조선 후기 학자 김상연(1689∼1774)이 읊은 살구꽃은 이와 달라 강렬한 인상을 준다. 시인은 과거 준비도 접고 숨어 살던 선비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 집행을 여섯 시간 앞둔 사형수는 고아가 될 외동딸 생각에 목이 멘다. 명말청초 김성탄(1608∼1661)은 사형 날 아침 아들에게 남기는 시를 썼다. 시인은 청나라 세조가 죽었을 때 소주(蘇州)의 선비들과 오현(吳縣) 현령의 부정을 고발…
한시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원나라 방회는 시인 중 술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마실 줄 모르더라도 늘 술을 읊는다고 적었다(‘瀛奎律髓’ 酒類). 당나라 백거이는 일찍이 술 마시길 권하는 ‘권주(勸酒)’ 시 연작을 남겼다. 조선 전기 문신 유호인(1445∼1494)은 이를 이어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