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와 박찬욱 감독은 동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개인적 복수를 다뤘다. 사마천이 쓴 ‘자객열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형가(荊軻)는 타인을 위해 복수에 나섰다. 도연명(陶淵明·365?∼427)은 이 사건에 주목해 다음 시를 썼다. 시는 형가가 연나…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1991년)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투 장면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의 작은 섬에 파병된 이탈리아 병사들은 사령부와 연락도 끊긴 채 주민들과 어울려 지중해의 햇빛 아래 뛰어논다. 이런 역설적인 한가로움은 조선 중기 임제(林悌·15…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영광의 길’(1957년)에는 적군의 요새로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기 전날 밤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은 총검에 찔리기보단 기관총에 맞는 게 낫다거나 폭탄이 제일 두렵다는 등 어떻게 죽는 게 덜 고통스러울까 고민한다. 그러다 죽고 싶지 않은 것만큼은 다…
조선시대 중인 신분의 김진수(1797∼1865)는 1832년 사행단을 따라 청나라를 다녀와 시집 ‘연경잡영(燕京雜詠)’을 남겼다. 북경에서 시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조선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환희(幻戱·마술 공연)였다. 시는 공연의 한 대목을 스케치하듯 포착한다. 아리따…
삶은 시와 어떤 관계일까. 짐 자무시 감독은 영화 ‘패터슨’(2016년)에서 일상과 겹쳐지는 시의 존재 방식을 다룬다. 버스 기사인 주인공 패터슨은 미국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1883∼1963)의 시를 읽으며 매일 비밀 노트에 시를 쓴다. 청나라 장사전(蔣士銓·1725∼1785…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 유배시절 주막집 뒷방에 서당을 열었다. 자신은 둔하다며 배우길 주저하던 아이 황상(1788∼1870)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산은 아이가 학질에 걸렸을 때 다음 시를 써주었다. 황상은 아전의 자식이었다. 병중에도 공부를 놓지 않는 제자에게 스승…
‘엄마’처럼 정답고 그리운 말이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 리’(1976년)에서 마르코는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 홀로 먼 길을 떠난다. 송나라 주수창(朱壽昌)도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마르코처럼 주수창도 마침내 어머니와…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비로소 삶이 윤곽을 드러낸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에서 주인공 정원(한석규)은 텅 빈 운동장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신 역시 언젠가 사라져버릴 것을 예감하곤 했다. 조선 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1771∼1853) 역시 자…
삼 가르바르스키 감독의 영화 ‘나의 첫 번째 장례식’(2013년)에서 주인공 윌은 생일날 자신에 대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무심함에 실망한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죽은 것으로 오인되자, 윌은 인도인 비제이로 위장해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도연명(陶淵明·365?∼427)도 …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의 영화 ‘토탈 이클립스’(1995년)는 시인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베를렌이 독주 압생트를 마시는 처음과 끝 장면 사이에 그들의 과거 추억을 배치한다. 베를렌은 랭보가 죽었다는 소식에 함께 즐기던 압생트를 홀로 마시며 랭보를 생각한다. 영화처…
알베르 세라 감독의 영화 ‘기사에게 경배를’(2006년)은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이 아니라 우정에 집중한다. 괴짜 기사는 종자 산초에게 연신 잔소리를 하고 핀잔을 주지만, 산초는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벗이다. 나이와 신분을 넘어선 특별한 우정을 청나라 원매(袁枚·1716∼17…
존 캐서베티즈 감독의 영화 ‘남편들’(1970년)에서 세 친구 해리, 거스, 아치는 절친했던 스튜어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며 깊은 상실감에 빠져든다. 해리는 이제 셋만 남아 쓸쓸하게 보인다고 하고 거스는 죽은 이를 그만 보내자고 되뇐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스튜어트가 남…
한시에는 남자들의 우정을 읊은 시가 많다. 반면 이성 간의 연애 감정을 읊은 시는 드물다. 삼국시대 위나라 유정(劉楨·?∼217)이 쓴 다음 시는 마치 이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시의 화자는 가을날 규방에서 잠 못 이루며 님에 대한 속마음을 적어 본다. 전장으로 떠난 …
리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년)에서 소년 파이는 선박회사 사고 원인 조사원들에게 배가 난파된 뒤 망망대해에서 홀로 살아남게 된 과정을 이야기한다. 인조반정 뒤 광해군 복위를 도모했다는 무고로 잡혀온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국문을 담당한 정승에게 자신의 …
영화 ‘빠삐용’(1973년)에서 죄수들은 나비를 잡는다. 나비의 날개는 갇힌 그들의 처지와 대비되고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은 자신을 나비에 빗댄다. 당나라 낙빈왕(駱賓王·638?∼685?)은 죄수가 된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매미에 빗대 노래한 바 있다.678년 낙빈왕은 상소문이 측천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