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에 이끌리는 걸 비난할 수 없다. 책이라고 다를까. 서점을 거닐다 보면 먼저 표지에 눈길이 간다. 표지가 마음에 들면 책을 펼쳐 든다. 읽다 보면 애정이 생기고 사고 싶어진다. 책에 빠져든 뒤엔 상관없지만, 첫 만남에 이끌림을 만드는 건 표지의 힘이다. 그래서 요즘 출판사들은 표…
“모진 시간을 거친 김지하 시인(1941∼2022)을 버티게 한 건 장모 박경리 작가(1926∼2008)일지도 모른다.” 2022년 5월 9일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김 시인의 빈소. 전날 별세한 김 시인의 마지막 길에 모여든 옛 친구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입을 모았다…
문학 담당 기자로 젊은 작가들을 만나다 보면 ‘꿈의 가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좋은 학벌, 명석한 두뇌를 지닌 작가들이 생계 유지엔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때문이다. 한 30대 소설가는 “아직 부엌이 없는 반지하 방에 살고 있다”고 했다. 다른 30대 소설가는 “내가 정한 최소 생활비…
“현대 산업 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마술적 현실주의.” 황석영 작가(81)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영문판 ‘마터 2-10’)에 대해 영국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인용한 해외 평론 중 가장 눈길이 간 부분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실과 환상을 뒤섞는 문학 기법이다. 콜롬비아 작가…
이금이 작가가 올해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엔 번역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이수지 작가가 202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수상했지만, 한국인 글 작가가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금이 작가는 수백…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여러 해석을 내놓곤 한다. 특히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처럼 주인공의 감정과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더욱 그렇다. 물론 인터뷰를 찾아보면 작가와 감독의 생각을 유추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이의 입장에서 쓰인 글을 읽으면 창작자의 의도…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장편소설 ‘듄’(전 6권·황금가지)은 영웅주의를 경고한 작품이다. 처음에 주인공 폴은 자신을 메시아로 부르는 이들을 두려워한다. 추종자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때의 문제를 예견한 것. 하지만 아버지를 잃고 적에게 쫓기며 궁지에 몰린 폴은 …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4화. 악인을 감별하는 능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주인공 이탕(최우식)은 지경배 검사(남진복)를 살해하기 전 잠시 망설인다. 지 검사를 납치해 포박한 상태라 죽이기만 하면 되지만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것이다. 이탕은 말없이 앉아 책 한 권을 읽는다. 책…
미국 뉴욕의 한 공원. 파란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해성(유태오)이 홀로 서 있다. 해성은 어색한 듯 두 손을 만지작거린다. 괜스레 주위를 둘러보고 자꾸 머리를 매만진다. 해성의 얼굴엔 걱정이 묻어 있다. “해성!” 흰 셔츠와 회색 바지를 입은 나영(그레타 리)의 부름에 해…
15일(현지 시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8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의 10개 에피소드엔 명언에서 모티브를 받은 시적인 소제목이 붙어 있다. 특히 3화 소제목 ‘내 속엔 울음이 산다’는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
문학 담당 기자는 매년 12월이면 전화로 신춘문예 응모자에게 당선을 통보한다. 얼굴을 마주 보진 못하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대충 나이를 추측할 수 있다. 올해엔 유독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에 무게감이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은 채 “정말요?”라고 수차례 물어보는 당선자도,…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격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전자책(e북)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팬덤을 만들었고, 결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최근 만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출판계를 뒤흔든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의 인기의 이유를 가격…
최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산세계유산센터’를 들렀을 때 눈길이 가는 소개 문구가 있었다. 후지산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일본의 예술 작품 덕이라는 것이다. 후지산을 묘사하고 예찬한 작품들이 유네스코의 마음을 끌었고, 등재에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
소설집 ‘저주토끼’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기 힘든 환상소설이 주로 담겨 있다. 그러나 단편 ‘재회’는 예외다. 비현실적인 요소 없이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소설이기 때문이다. ‘재회’는 대학원 논문을 쓰기 위해 폴란드로 자료 조사를 떠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도서관에서 폴란드…
“한국어요? 유튜브에서 K팝 음악을 듣고,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배웠어요.” 1일(현지 시간) 제42회 ‘샤르자 국제도서전’이 열린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 엑스포센터. 1999년생 샤르자 출신 여성 프리랜서 통역가인 웨즈 단 씨는 검은색 히잡을 매만지며 유창한 한국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