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그게 대왕께서 육국의 후손들을 다시 왕으로 세울 수 없는 두 번째 이유가 됩니다. 아직 천하 만민의
“어떤 계책인데 저토록 강성한 초나라의 세력을 꺾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장량이 반가워하는 낯빛으로
그러는 사이에도 형양 성밖의 형세는 나날이 한왕 유방에게 불리해져 갔다. 용저와 종리매가 길을 나누어 한군의
한왕 유방이 팽성을 칠 때는 한군(漢軍) 10여만 외에도 40여만 제후군이 있어 군사만도 56만에 이르렀다. 거기다가 한나
패왕은 항백을 시켜 기어이 육성(六城)을 깨뜨린 뒤에 성안에 있던 구강왕 경포의 가솔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뿐
“전에 대왕께서는 발을 씻기면서 역((력,역))선생 이기(食其)를 맞이하다가 크게 무안을 당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
구강왕 경포가 한왕의 사자로 온 수하와 더불어 샛길로 형양에 이른 것은 한(漢) 3년 12월로 접어든 뒤였다. 경포는
그때 패왕 항우는 아직도 하읍(下邑)에 머물러 있었다. 한편으로는 형양에 틀어박힌 유방을 한 싸움으로 사로잡을
구강을 떠난 경포의 군사들이 육현(六縣)으로 달려가기를 반나절이나 하였을까, 앞서 살피러갔던 군사들이 돌아와
“성은 이미 사흘 전에 초나라 군사들 손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용저와 항성이 남긴 군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오냐. 정녕 네놈이 과인에게 벌주를 마시게 할 재주가 있는가 보자!” 경포가 그러면서 큰 칼을 뽑아들었다.
“항우가 대군을 이끌고 구강으로 쳐들어간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할 것 없소. 먼저 토끼사냥부터 한 뒤에 호랑이를
“그렇다면 다시 한번 용저에게 사람을 보내 행군을 재촉하시오. 아부(亞父)의 말을 따른다 해도 너무 오래 여기 잡
이윽고 원병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경포의 매복을 벗어난 패왕의 후군이 골짜기를 나왔다. 헤아려 보니 적지 않은
“초나라 군사 한 갈래가 우현(虞縣)을 거쳐 율현(栗縣)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를 피해 팽성으로 내려가는 군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