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근래에 그런 풍문을 듣고 걱정했더니, 그럼 그게 사실이었단 말이오? 의제(義帝)께서 돌아가신 것이 정말로 항
뒷날 동한(東漢)의 수도가 되는 낙양(洛陽)은 그때 하남군(河南郡)에 속한 현이었다. 진나라 말기 그 낙양현의 남쪽
“창칼 없이 싸울 수 없듯이 아니 먹고 걸친 것 없이 싸울 수도 없습니다. 믿을 만한 장수에게 한 갈래 군사를 떼어주
패왕 항우의 대군이 성양을 에워싼 것은 다음날 한낮이었다. 패왕은 먼저 성루 아래로 가 전횡을 불러내고 항복을
좌우에 있던 장수들이 한꺼번에 나서 패왕을 말렸다. 군율을 세우는 데는 엄하지만 자신이 곁에 두고 부리던 장
한편 간신히 목숨을 건져 성양을 빠져나간 초나라 군사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갈래는 무턱대고 제 도읍인
“모두 갑주와 투구를 여미고 단단히 싸울 채비를 하라. 동서남북 어느 쪽이건 성문이 열리기만 하면 적에게 숨 돌릴 틈을
“적도들은 성안의 곡식을 모조리 거두고 장정들까지 뽑아 세력을 배나 불린 뒤에 급히 성을 떠났다고 합니다. 성
“그게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지난 두 달을 돌이켜 보십시오. 당장도 또 어디서 악에 바친 제인(
“알았다. 그렇다면 내 이제 그것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산 채로 묻고 그 처자는 또한 모조리 부로로 끌고 갈 것이다. 민가
성양을 떨어뜨린 패왕은 사로잡힌 전영(田榮)의 군사들과 그들을 거들어 싸운 백성들을 모조리 성밖에 끌어내어 산 채
“이제 우리 서초(西楚)의 맹장(猛將)과 정병(精兵)은 거의 모두 이 성양(城陽)으로 데려온 셈입니다. 팽성에 아직 10
패왕이 한왕 유방을 달리 보기 시작한 것은 유방이 먼저 관중으로 들어가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낸 다음이었다. 관중
거록(鉅鹿)의 싸움에서도 전영(田榮)은 패왕 항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패왕이 왕리(王離)의 대군과 피투성
이윽고 시체와 뒤섞인 구덩이 안의 사람들이 야릇한 마비와 무력감에 빠져 두 눈만 껌벅이고 있을 때 말발굽소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