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이 멈춰지고 구덩이 바닥에 함께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줄지어 구덩이 밖으로 기어오르자 비로소 제나라 항병(降兵)
한(漢) 2년 3월 하순, 말 그대로 저무는 봄(暮春)의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다. 산동 임치(臨淄)에서 하룻길쯤 되는 제
“신(臣)도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외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대왕께서 받아주신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 제 주인에
한왕 유방의 허락이 떨어지자 위무지는 곧 진평을 불러들였다. 그때 진평을 한왕의 유막(유幕)으로 데리고 들어온
진평(陳平)은 진작부터 패왕 항우의 오만과 편견 때문에 되풀이되는 실책에 실망을 키워왔다. 그러나 은왕 사마앙을
“신이 옛적 위왕(魏王) 구(咎)를 섬기고 있을 때에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진평이란 사람이 찾아와 대왕을 뵙고자
은왕(殷王) 사마앙이 항복했다는 말을 듣자 한왕 유방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제 발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사로잡혀
은왕(殷王) 사마앙의 군사들이 갑자기 동문으로 빠져나오자 잠들어 있던 한군(漢軍) 진채가 잠시 술렁거렸다. 기병
“장군께서는 내일 하루 동문 쪽을 맡아 성을 들이치다가 해가 지면 에움을 풀고 동쪽으로 가시오. 말발굽은 헝겊으로
“신(臣)이 은왕(殷王) 사마앙과 이웃하고 있어 그 일을 잘 압니다. 대왕께서도 아시다시피 사마앙은 원래 조(趙)나라
“내 지난날 패왕의 군중에서 장군을 만난 듯도 하오만 그때는 알아 뵙지 못했구려. 한왕께서는 어디 계시오?”
한신은 조참과 관영에게 보기(步騎) 5000을 주고 전군(前軍)으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중군(中軍)이 되어, 각기 군사 1만
“위표(魏豹)는 틀림없이 패왕이 서위왕(西魏王)으로 세웠으나 반드시 그의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패
“항왕은 천하를 아우른 진나라의 수십만 갑병(甲兵)을 마소 잡듯 하며 마침내 함양까지 이른 사람이외다. 힘없는 제
한(漢)2년 2월 한왕 유방은 마침내 진나라의 사직단(社稷壇)을 없애고 한나라의 사직단으로 바꾸어 세웠다. 겉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