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것은 초군이 고릉에 들면서 인근 민가의 곡식을 털다시피 해서 모아둔 며칠분의 군량이었다. 당장 3만이나 되
녹각과 목책을 뚫고 지나느라 느려지고 흩어지게 된 초군은 방벽과 보루를 하나하나 넘는 동안에 더욱 속도가 느려지고
오래잖아 종리매와 환초 항양 정공 등이 각기 군사를 이끌고 패왕 항우 쪽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멀리 한왕을 뒤쫓았
“너, 이놈 옹치….” 못 이기는 척 말고삐를 잡혀 끌려가면서도 한왕이 옹치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누가 우리 대왕을 핍박하느냐? 어서 무례한 손길을 멈추지 못하겠느냐?” 그리고 달려와 한왕을 에워싸고
“장졸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데 어찌 과인만 피한단 말이냐? 저들과 함께 여기서 싸울 터이니 너희들이나 후군으로 처진
중군(中軍) 한가운데가 돌파당하자 한군은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그때 다시 한군의 뒤를 돈 환초와 종리매의 군사
한왕 유방이 패왕을 뒤쫓으려 광무산을 떠날 때 주발은 한군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양하에 이르러 번쾌가 먼저 나
“모두 멈추어라. 함부로 뒤쫓지 말고 대왕께서 이끄는 본진이 이르기를 기다리자.” 번쾌가 말고삐를 당기며 그렇게
“속임수는 무슨 속임수냐? 이 허허 벌판에다 대군을 숨기겠느냐, 불을 지르고 물을 가두겠느냐? 거기다가 우리 대
“대사마 항양은 군사 1만을 이끌고 나아가 한군(漢軍)을 맞되, 구태여 죽기로 싸울 것은 없다. 한번 창칼을 맞대 보
“진 호군(護軍), 그건 또 무슨 소린가? 항왕이 쳐 둔 그물로 뛰어들다니?” 한왕이 진평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평이
“그렇다면 번(樊) 장군의 뜻대로 해보는 게 어떻겠소?” 한왕이 마침 곁에 있는 장량에게 물었다. 장량이 가만히
“대왕께서는 그렇게 속고도 한왕 유방을 모르십니까? 자신이 불리하면 금방 숨이라도 넘어가는 것처럼 대왕의 발
그해따라 겨울은 빨리 깊었다. 겨우 시월 초순인데 매서운 북풍이 몰아쳐 굶주린 데다 입성까지 신통치 못한 초나라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