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경매가 지나간 위판장 물기 어린 바닥에 주홍빛 집게다리 하나 뒹군다. 대게잡이 어선에 가득 실려 온 어느 붉은대게(홍게)에서 떨어져 나왔나 보다. 8개 다리 모두 살로 통통하고 꽉 들어찬 내장으로 몸통이 단단한 것들은 이미 상품(上品)으로 팔려 떠났다. 아침 댓바람에 부두로 들…
우리나라는 성곽(城郭)의 나라다. 조선 초기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양성지(1415∼1482)의 말이다. ‘세조실록’에 기록된 상소(上疏)에서 그는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아뢴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도 현재까지 확인된 성이 2100개를 넘는다. 90%는 산성(…
“타이가르, 타이가르.”12인승 승합차 운전사가 오른쪽 창밖을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새벽 미명(未明)에 덜 깬 눈을 비비며 내다봤지만 어둠뿐이다. 운전석 뒤 탑승객이 “뭔가 길옆 수풀 속으로 움직인 것 같다”고 했다. 타이가르, 타이거(tiger), 호랑이였다. 네팔 제2의 도시 포…
제주도 한 달 살기 바람이 몇 년째 가실 줄 모른다. 살아 본 사람들의 경험을 담은 책과 유튜브 프로그램은 수십 권, 수십 건이다. 바다 건너 섬 생활 이야기가 이웃 마을 ‘맘 카페’ 댓글 보듯 가깝다. 제주가 익숙해진 것 같다. 그걸로 충분한 걸까. 누구 말대로 제주는 언제나 ‘낯선…
나는 돌이로소이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싱싱한 흙내, 짭조름한 갯내 물씬한 전남 장흥(長興)에서 나는 돌이로소이다.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닌 내가 주역입네 할 생각은 없소. 다만 그동안 가려져 있던 나를 슬그머니 드러내 보려 할 뿐이오. 세계 전체 고인돌의 40%가량이 모인 한반도에서도…
천안지안인자안(天安地安人自安). 하늘이 편안하고 땅이 편안하니 인간 또한 편안하다. 충남 천안이 그만큼 살기 편안하다고 자부하는 표현이다. 한갓진 곳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유관순의 아우내장터와 독립운동가 이동녕 이범석 생가에 독립기념관까지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있다. …
‘동반치악(東蟠雉岳) 서주섬강(西走蟾江).’ 동쪽으로 치악산(雉岳山)이 둘러 있고 서쪽으로 섬강이 내달린다. 조선 초기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강원 원주를 이렇게 묘사했다. 치악산은 원래 적악산(赤岳山)이었다. 가을 단풍에 빨개진 산이 절경일 터다. 치악산의 치…
가을은 상반된 것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추수(秋收)와 낙엽이다. 결실과 소실(消失)이다. 채움과 비움이다. 풍족하면서도 허전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넉넉한 마음으로 아쉬운 상실을 위로하는 길이다. ‘도자(陶磁) 여행’을 권해 본다. 도자는 본디 그릇[器]이다. 쓰임이…
‘남창(南窓)으로 향한 서탁(書卓)이 차고 투명하고 푸릅니다. 새삼스럽게 눈앞의 가을에 눈을 옮깁니다.’ 창밖으로 여러분이 보입니다. ‘푸른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메밀꽃 피었다 푸른 집은 제 이름을 딴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달빛언덕’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평양 푸른 집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