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비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책임은 출산이다.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순조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명이나 되는 왕비가 있었지만 자식을 낳은 왕비는 인경왕후 2녀와 순원왕후 2남 3녀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후궁에게서 낳은 자식들이다. 정식 왕비는 아니었지만 세자빈인 혜…
달콤한 맛에 대한 욕구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설탕을 보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 여린 소나무 가지의 속살은 단맛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 주는 창고였다. 치아로 한참 씹으면 단맛이 조금씩 배어 나왔다. 조선의 장수왕 영조도 재위 47년, 송절주(松節酒·소나무 가지를 넣어 빚은 약주)에 대…
조기를 통으로 소금에 절여 만드는 굴비의 약명(藥名)은 ‘상어(G魚)’다. 이때 한자 상(G)은 기를 양(養)자 밑에 물고기 어(魚)자가 합해져 만들어진 글자로, ‘몸을 보양하여 기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굴비는 몸을 보양하여 기르는 생선이라는 뜻이 된다. ‘본초강목’에는 “순…
뜨거운 온천도 있지만 차가운 냉천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몸 안에 화(火)가 쌓여 심해진 안질(眼疾·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냉천을 찾았다. 물의 냉기로 화를 진정시키려는 시도였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도저히 붓대를 잡고 글씨를 쓸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안질이 심했다. 추사는 자신의…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인간이 생명을 두고 벌이는 전쟁이다. 전쟁 양상이 격렬할수록, 기간이 길수록 후유증은 커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크고 치료 기간도 길다. 따라서 코로나 후유증(롱코비드)이 독감보다 극심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코로나…
요즘 광란의 폭증세를 보이는 코로나19의 대표적 증상은 목이 칼칼하거나 아픈 인후통(咽喉痛)이다. 한의학에선 목에 생긴 염증을 감정 기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열(火) 받는 일이 생기면 목에 염증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는 조선시대 왕가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
‘마음을 다스리면 병이 낫는다’라는 이야기는 실록의 보편적 질병관이다. 조선시대를 지배한 유학적 의료관(치료관)의 핵심은 마음을 닦는 ‘수양론’이었다. 질병의 원인을 육신보다 마음에서 찾았다. 욕망과 기질을 제어해 도덕적 삶을 살면 인간 본연의 성품이 드러나 모든 질병에서 해방된다는 …
태종은 조선시대 스피드 광이었다. 태종 재위 2년 9월 왕이 친히 강무(수렵대회)에 나선다고 하자 신하들은 극구 만류한다. 정몽주를 죽인 무신 조영무는 펄쩍 뛰며 “아랫사람들이 전하의 사냥을 반대하는 것은 말을 마음대로 달리다 탈이 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읍소한다. 비슷한 시기 태조…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의 4남 성녕대군은 오진으로 죽은 최초의 왕자일지 모른다. 적어도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그렇다. 감염병인 천연두를 감기로 오인해 치료를 진행하다가 죽은 의료 사고였다. 냉혈한으로 알려진 태종도 자식의 죽음에 참척의 슬픔을 그대로 내보였다고 한다. 조선 초…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임상 경험은 의학 발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한의학적 임상 경험을 담은 조선시대 기록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드물게 남은 임상 경험 서적은 무척 귀한 책이다. 그중에서도 영조 때 어의 이수귀가 남긴 ‘역시만필’이라는 책은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는…
어릴 적 여름날 시골 연못은 가장 훌륭한 놀이터이자 수영장이었다.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부모님의 ‘물 조심’ 엄명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여름 수영 놀이의 가장 큰 적은 종아리 쥐였다. 입술이 파래질 정도의 산골 찬물에서 몇 시간씩 수영을 하다 보면 과로한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 경우가…
“테니스공을 베고 잤나?”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의 몸에 새겨진 동그란 멍 자국에 미국 언론이 보인 반응이었다. 멍 자국은 부항요법의 결과물로 밝혀졌다. 펠프스가 굳은 등 근육을 풀고자 전통 한방 시술을 받은 것이다. 조선 19대 임금…
정조의 장자였던 문효세자가 일찍 세상을 뜨자 순조는 11세에 왕세자에 책봉돼 그해 왕위에 오른다.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는 사이 어린 그는 수두, 홍역, 천연두 등 전염병을 세 차례나 겪으며 생사를 오간다. 모두 바이러스성 질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순조의 면역기능에…
12세에 왕위에 오른 조선 13대 왕 명종은 여름만 되면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재위 16년에는 경연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나는 약질인 데다 감기에 잘 걸리고 간간이 설사까지 해 항상 기운이 나른하다. 간혹 열이 치받치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학문이 중하기는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니 …
예전엔 무서운 병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 적지 않다. 종기는 조선시대 수많은 임금의 목숨을 위협했지만 요즘은 환자를 찾기 힘들다. 주렁주렁 누런 콧물을 달고 다녔던 꼬마 축농증 환자도 사라졌다. 가슴팍에 손수건을 붙인 초등학교 입학식은 흑백사진에서나 볼 수 있다. 더위 먹어 생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