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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집은 멀리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차를 타고 코앞에서 내려 옛집에 들어가 지붕의 처마선을 감상하고, 공포(공包)나 익공(翼工)을 보며 감탄하고 사진 몇 장 찍고 나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것은 어리석다. 흐르는 개울을 따라 걷고, 개울을 경계로 펼
조선집을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조선집에는 분명 그들의 삶의 태도가 묻어 있을 것이고, 그 삶의 태도는 그들의 가치에서 나왔을 것이고, 그 가치는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性理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리학이 어떻게 조선집들을 규정하고 있는
서원건축은 후기로 올수록 장판각이나 장경각, 누각이 사라지고 19세기에 오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되는 단순한 형태를 띠게 된다. 필암서원(筆巖書院)은 이러한 서원건축의 변화에 많은 추정을 가능하게 해 준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와 그의 사위인
서원은 각 지역 사림들의 본거지였던 만큼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했다. 처음에는 강학이 주된 기능이었지만 점차 문서를 보관하고 책을 편찬하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비슷한 시기에 선현을 배향하고 제향하는 기능까지 추가되었다. 그러다 강학 기능이 점점 작아지고 선현
서원(書院)이란 명칭은 당나라 때 궁중에 설치되어 서적을 편찬하고 보관하던 집현전서원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의 서원건축에서 보이는 장서고는 서원의 이러한 원래 기능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그 후 송나라 때부터 선현을 받들고 어울려 공부하던 본격적인 서원이 나타
조선의 성리학은 많은 점에서 뒤틀린 모습을 보인다. 안향이 전한 성리학은 당시 원나라 성리학을 주도한 노재(魯齋) 허형(許衡)의 학풍으로 우주론적인 이기(理氣)보다는 심성수양을 중요시하는 실천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성리학은 남명학파 외에는 거의 이기에 치
대전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1683년, 나이 77세에 지은 별서(別墅)정원이다. 지금은 소제동의 별당 건물이었던 기국정이 옮겨왔고, 단장이 둘러쳐지고 우암사적공원의 건물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옛 모습을 상상하
동춘당 송준길은 당파가 뚜렷했던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학문적으로는 율곡 이이와 사계 김장생으로 이어지는 기호 예학을 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서인에 속했다. 그러나 그는 퇴계 이황과 서애 유성룡으로 이어지는 영남 예학의 거유인 우복 정경세의 사위
아는 출판사 직원이 충청도에 놀러갔다. 끼니가 되어 음식점에 들렀다. 딱히 뭘 먹자고 들른 곳도 아니어서 차림새에 눈길을 주는 둥 마는 둥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이 음식점은 뭘 잘하나요?”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귀찮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진한 충청도 사투리로 이
대전 대덕구 중리동은 대대로 은진 송씨(恩津 宋氏)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옛날에는 이 마을을 윗중리, 백달촌 또는 하송촌이라 불렀는데 마을 동쪽은 상송촌으로 동춘당과 고택이 있다. 은진 송씨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된 것은 고려 때부터인데 입향조(入鄕祖)는 송명의
충남 아산에 있는 맹씨행단(孟氏杏壇)의 주산은 설화산이다. 봉우리가 우뚝 솟은 이 잘생긴 산은 망경산과 태화산을 거쳐 아산에 이르고, 거기에서 다시 흑성산 태조산 성거산을 거쳐 천안에 이른다. 그리고 안산의 서운산에서 한남금북정맥을 타고 보은의 속리산에서 백두
벼슬에서 물러나 선원마을로 돌아온 매산 정중기는 마침 닥친 천연두로 아우와 두 사촌아우를 잃는다. 그래서 천연두를 피해 1741년 56세 때 선원리에서 약 15리 떨어진 산속인 ‘매곡마을’에 들어왔다. 매산은 매곡리에 터를 잡은 연유를 ‘매곡우사(梅谷寓舍)’에 자세히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사랑하는 식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중국인들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가장 좋아한다. 이상주의적인 조선의 지식인들은 유난히 매화를 사랑했다. 예쁘기도 하지만 매화는 만물이 겨울의 추위 속에서 죽음을 겪고 있
격암 남사고(格庵 南師古)는 영남의 길지로 조령과 영천을 꼽았다. 흔히 영천을 일러 이수삼산(二水三山)의 고장이라고 한다. 두 물은 자현천과 고현천을, 세 산은 보현산 마현산 자산을 가리킨다. 서거정이 조양각이라고도 부르는 영천의 서세루에 올라 “흰 구름 누런 학
대구 달성군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은 삼가헌 박성수의 별당이다. 삼가헌을 지은 그 이듬해인 1770년 택지의 서쪽에 네 칸짜리 파산서당(巴山書堂)을 지은 것이 그 처음이다. 가르치기 위한 집이라기에는 강학공간이랄 것 없이 대청마루가 너무 협소하다. 아마도 스스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