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말이 있다. 불리한 상황에서 조급하게 승리를 추구하다가는 큰 희생만 내고 패배할 수 있다. 느리고 멀리 우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술이 실제로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하자, 집정관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당시 로마의 병사들…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솔직하게 풀면 “말로 하다가 안 되니 주먹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쟁 중인 당사자에게 “제발 폭력을 멈추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하자”라는 호소는 별 효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가 패자의 땅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제 한국이 큰일 났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트럼프 측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한국은 머니 머신이다’, ‘방위비 부담을 크게 올려야 한다’, ‘유럽, 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국은 모두 개입할 수 없다. 한국은 나중 순위다’라는 발언도 했…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를 공격하면서 유엔평화유지군 기지를 침공했다. 세계가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했다. 그런데 유엔평화유지군의 역사를 보면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과거 수많은 분쟁지역에서 막상 충돌이 시작되면 평화유지군은 힘없이 밀려나기 일쑤였다.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돌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까지 파견했다. 남북한은 두 개의 국가이며 대한민국은 북한의 제일의 적대국가라고 선언했다. 북한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한 간에 당장 전쟁의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쟁 중인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력을 지원할 여력도…
신와르가 죽었다. 며칠 전 지리산 빨치산 지도자 이현상의 최후를 다시 살펴보았다. 왠지 ‘신와르의 최후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이현상의 마지막 순간은 여러 가지 미스터리가 남아 있지만, 국군의 토벌전에 더는 산속도 안전하지 않자 포위망을 뚫…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의 침공에 맞서 마라톤에서 전투를 벌일 때 아테네를 도와준 유일한 폴리스가 플라타이아이라는 작은 폴리스였다. 아테네는 감격했고, 이들을 우방으로 예우했다. 이렇게 시작된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는 승리했고, 그리스의 강국이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
중동 정세가 계속 요동치고, 주가와 원유 가격을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 전쟁 앞에서 정의와 인권, 양심 따위가 얼마나 하찮은 것이 되며, 입으로 외치는 평화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그리고 지구 건너편 사람의 고통과 파괴보다 내 생활물가의 앙등을 더 진지하게 걱정한다는 …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란과 헤즈볼라가 개입하면 중동전쟁으로 확대되고 이스라엘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들 했다. 그때 필자는 헤즈볼라나 이란이 전면전 형태의 전쟁을 벌일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필자는 오히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칠 가능성이 있으며, 7월에는 이스라엘…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백면서생인 제갈량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하고 그에게 군사 지휘를 맡기자 관우와 장비는 분노한다. 이 이야기는 소설의 설정이긴 하지만 정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과연 제갈량을 인정할 사람이 있을까? 실제 현실에서 제갈량은 문무를 겸비한 리더가 꿈이었고, 군사 지휘…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단에서는 레이저를 이용한 마일즈 장비로 모의 전투 훈련을 시행한다. 이 훈련 장비로 민간동호회를 대상으로 하는 경연대회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이 행사에 초청받아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와서 두 번 놀랐다. 젊은 예비역이나 특수부대 출신들이 주축…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맡은 일에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쏟아부을 수 있는 힘과 노력을 다했다는 의미와 그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의미이다. 보통은 후자의 의미로는 잘 사용하…
올해 무더위가 기상청 창설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다는 2018년 기록을 깨뜨렸다. 전쟁은 잔혹하지만 무더위나 혹한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더욱 잔혹하다. 철모와 방탄조끼는 총알을 막는 대신 열사병을 일으킨다. 강철로 만든 갑옷을 입어야 했던 옛날에는 더위와 추위의 고통이 더했다. 여름이면 …
쿠르스크는 약간의 탄광을 보유한 것 외에는 특별하지 않은 조용한 도시였다. 1943년 7월 5일부터 8월 23일 사이에 쿠르스크 돌출부를 두고 독일군과 소련군 간에 혈전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을 곳이다. 그러나 독일군 80만 명, 소련군 200만 명…
우크라이나군이 기습적으로 쿠르스크로 치고 들어갔다. 쿠르스크는 독소전쟁 중에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쿠르스크에서 모스크바 간 거리는 약 500km이다. 전체가 평원이라 방어 지형이 적고, 방어에 많은 병력을 요구한다. 독일군은 모스크바까지 진격할 여력이 없었지만, 쿠르스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