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의 문턱. 국내에서 첫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가 나오더니 열흘 뒤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이름부터 생소한 감염병이 주는 불안과 공포에 식은땀을 흘렸다.
두려움은 무지(無知)를 먹고 자란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주를 이뤘지만, 정부는 감염자가 머문 병원을 공개하지 않아 공포를 키웠다. 난무하는 ‘카더라’ 속에 메르스 발병지인 중동에서도 사례가 드문 10대 환자가 발생했다. 아무 정보가 없는 일선 초중고교는 패닉에 빠졌다.
당장 어느 학교 학생인지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보건복지부는 개인 정보를 유출할 수 없다며 비공개로 일관했다. 교육부가 나서서 정보 공유를 요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해당 학생이 이미 입원해서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며 거부했다. 각 시도교육청은 혹시 자기 관내 학생인지 여부라도 확인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교육부는 “우리에게 인적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고 복지부에 화살을 돌렸다. 나흘 뒤 교사 확진자가 발생했다. 같은 레퍼토리가 되풀이됐다.
불안감에 자체 휴업하는 학교가 늘어나자 교육부는 “보건당국이 위기경보를 ‘주의’ 단계로 알려왔지만 우리는 ‘경계’ 단계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예방적 차원의 적극적 휴업을 권장했다. 서울 경기 등지에 일괄 휴업령이 내려지면서 3000곳에 육박하는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시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홈페이지에 매일 휴업 학교 명단을 공개했다. 복지부는 교육 당국이 불필요한 혼란을 키운다고 비판했다. 서로 삐걱대면서 ‘학생 및 교사 격리자 규모’에 대해 교육부는 32명, 복지부는 300명이라고 밝히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학교보건법이 개정됐다. 신설된 제14조의 3(감염병 예방 대책의 마련 등) 4항은 ‘교육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은 학교에서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감염병 발생 현황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법 때문인지, 학생 환자가 없어서인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두 부처 간 불화설은 들리지 않는다. 다행이지만, 어쩌면 다른 까닭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싸하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감이 같건만 이번에는 휴업 학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송파구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문에 일대 학교가 부랴부랴 휴업한 6일 아침, 서울시교육청에 ‘어느 학교가 휴업했느냐’고 묻자 “우리가 시킨 거 아니다. 어느 학교가 휴업했는지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국 교육청에서 매일 휴업 학교 명단을 보고받는 교육부 역시 전체 숫자만 공개하고 있다.
메르스는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고 신종 코로나는 보안이 중요한 병이라고 판단한 걸까? 메르스는 적극적 휴업이 필요하고 신종 코로나는 소극적 대응이 필요한 병이라고 보는 걸까? ‘메르스 당시 복지부의 입장’이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 국민의 알 권리보다, 두 부처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정보 공유 조항을 신설한 것이라면 지금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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