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의료원 건강의학센터에서 스트레스 상담을 맡고있는 李玉石박사(여)는 지난 2년간 이 병원을 찾아온 3천여명의 환자를 상담하면서 깊이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즉 『한국인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인이 지난 30여년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기적을 이루어 냈으나 그 대가로 다른 어느나라 국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27년간 살다가 지난 94년 귀국한 李박사는 『미국인들과 비교해볼 때 한마디로 한국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양대의대 신경정신과 金光一박사는 『문화가 다른 각 나라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한가지 기준으로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최근 전쟁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한국인이 전세계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연민의 정 느껴” ▼
지난 4월 홍콩에서 발행되는 유력잡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실시한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10개국 국민들의 생활의 질조사에서도 한국인의 65%가 『직장에서 항상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응답, 홍콩(62%) 대만(61%) 일본(52%)을 제치고 「스트레스 1위국민」이라는 불명예를 차지했다.
정신분석의들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심하게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증거로 다음과 같은 통계자료를 든다.
우선 술소비량. 20세이상 한국인 남자가 1년에 마시는 술은 소주 1백33병, 맥주 1백80병으로 세계 제일의 술소비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15세이상 인구의 68%가 담배를 피우는 세계 1위의 흡연율 △10년전에 비해 3배이상 많아진 심근경색 및 협심증으로 인한 사망환자 수 △매년 늘고 있는 과로사와 돌연사 △최근 결혼한 6쌍중 1쌍이 이혼할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이혼율 등이 한국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를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전남대 심리학과 李鍾沐교수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빠른 속도의 사회변화』라고 지적하고 『한국인처럼 해방이후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경험한 국민은 전 세계적으로 없다』고 말했다.
이는 美 미시간대 사회조사연구소 잉글하트 교수의 조사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세대별 가치관의 차이를 지수화했을 때 유럽 미국 일본은 20대와 70대가 20포인트 정도 차이를 나타내지만 한국은 무려 70포인트가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
대홍기획의 「한국인 라이프 스타일조사」에서도 한국인의 80%이상이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 한국인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또 다른 요인으로 생산성본부의 李正勳박사는 한국인 특유의 조직문화를 꼽는다.
스트레스는 미래가 불투명할 때 커지는데 한국의 기업이나 공직사회의 조직문화는 능력보다는 연줄 학연 지연으로 승진이 좌우됨에 따라 직급이 높아질수록 신경을 써야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
결국 승진이라는 게임에서 능력보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룰이 지배하다보니 공식적인 업무시간외에도 각종 술좌석 등 인간관계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과 신경을 써야 하고 그만큼 스트레스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기업문화의 장점으로 꼽혔던 「종신고용제」가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대거 직장에서 쫓겨나가는 명예퇴직제가 도입되면서 스트레스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가정의 위기」도 한국인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는 중대 요인이다. 정신과전문의 薛玹旭박사는 △여성의 사회진출 △성개방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붕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맞벌이 여성은 가정과 직장을 양립시켜야하는 「슈퍼우먼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편 역시 직장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자상함을 요구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