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圭夏 전대통령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지난 80년8월 하야 이후 16년동안 자신의 가슴속 깊이 꼭꼭 숨겨둔 역사의 진실을 그는 법정에 강제로 끌려 나오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털어놓지 않았다.
14일 오전 10시8분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 재판장인 權誠부장판사의 지시에 따라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崔전대통령이 법정 왼쪽의 출입문을 통해 들어섰다.
한동안 외출을 하지 않아서인지 핼쑥한 얼굴의 崔전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법정안에 있던 검사 변호인 방청객들은 재판부의 특별요청에 따라 모두 기립해 예우를 갖췄다.
당초 예상됐던 생존해있는 전직대통령 3명이 모두 나란히 법정에 서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그가 법정에 들어서기 직전 全斗煥 盧泰愚피고인의 변호인들이 『두 전직대통령은 피고인신분으로, 또 한 명은 증인석에 서는 것은 헌정사의 비극』이라며 全―盧 두 피고인의 퇴정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법정 바깥으로 나가고 崔전대통령이 법정쪽으로 들어오면서 세 전직대통령은 잠깐동안 스치듯 대면했을 뿐이었다.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법정에 들어선 崔전대통령은 처음에는 법정안이 생소했는지 다소 멈칫하기도 했으나 周永福피고인 등 몇몇 안면이 있는 피고인들에게 차례로 목례를 하면서 증언대로 걸어갔다.
인정(人定)신문을 할때도 재판장은 통상 법정에서 존칭을 쓰지 않는 관례와 달리 그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등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崔전대통령은 증인선서부터 거부하고 나섰다. 그 대신 양복 윗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서면을 꺼내 법정증언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3분여동안 읽어 내려갔다.
재판부가 증인선서없이 그냥 신문을 진행하겠다고 밝히자 崔전대통령은 갑자기 왼손을 번쩍 들어 『허리가 좋지않아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건강상태를 설명했다. 또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답변하지 않겠다』며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강조했다. 곧바로 검찰측의 신문이 시작됐지만 그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어 변호인측을 대표해 鄭永一변호사가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준비해온 40여개의 신문사항을 아예 포기한채 딱 한가지 질문에만 대답을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40분동안 검찰측과 변호인의 질문은 불과 10여개에 불과했지만 그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재판장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재판장은 결국 증언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증인이 성의있는 답변을 하지 않아 매우 유감스럽다』며 퇴정을 명령했다.
자신의 침묵에 스스로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법정 출입문을 빠져나가기 직전 그는 몸을 돌려 방청석과 재판부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金正勳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