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K씨(51)는 며칠전 근무 중에 받은 전화로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20대로 보이는 상냥한 목소리의 여성이었다.
―부장님 계십니까(상대는 마치 K씨와 친숙한 사이인듯 이름을 정확히 댔다).
―전데요. 어디십니까.
―네, 여기는 호텔입니다. 저는 판촉부 입니다.
―네, 그런데요.
―선생님에게 우리 호텔의 멤버십을 권해 드리려구요. 선생님같은 분은 우리 호텔의 우대회원이 되실 자격이 있으시고, 멤버가 되시면….
전화는 요컨대 호텔멤버로 가입하면 각종 할인혜택이 있다며 가입을 권하는 것이었다. 『호텔에 갈 일이 별로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으나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바쁜 근무시간 중에 엉뚱한 전화를 받고 시간을 뺏긴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상대가 자신의 이름과 직함 등에 대한 신상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데서 불쾌감은 더욱 심했다.
K씨처럼 「불쾌한 전화」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전화로 판촉하는 업체가 급증하면서 직장인들이 무차별적인 「전화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일부 학원에서 수강생 모집이나 교재판매에 활용하는 데 그쳤던 전화판촉이 최근에는 의류 화장품 백화점 보험회사 레포츠클럽 등 각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화판촉을 대행해 주는 전문업체도 생겨 서울에만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회사원 박모씨(27·여·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얼마전 학원수강을 권유하는 전화가 와 「이미 다니고 있다」고 했더니 내가 다니는 학원의 원장과 교재에 대한 험담을 한참 늘어놓고 그후로도 1주일에 한번씩 계속 전화를 해온다』면서 불쾌해 했다.
대기업 과장인 가모씨(34)는 『일단 전화를 받으면 일방적으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아 보통 3분, 심하면 10분 정도 전화를 잡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어떨 때는 이런 전화를 하루에도 6,7번씩 받아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판촉직원들이 개인의 이름이나 퇴근시간 승진시기 등 신상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어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시비가 일기도 한다.
최근 대리로 승진한 손모씨(29·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승진하기 전 「학원인데 승진시험도 얼마 안남았으니 우리 학원의 영어교재로 공부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전화를 받았다』면서 『전혀 모르는 상대방이 내 이름과 시험응시 여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꺼림칙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박모씨(30)는 『바쁠 때 판촉전화가 오면 남의 자리로 돌리기도 하는데 내가 돌린 전화를 다시 받게되는 일도 있어 동료들끼리 아예 전화를 돌리지 않기로 합의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들에 따르면 전화를 거는 판촉사원들은 『직원 이름 5명을 알려주면 의류할인 티켓을 보내주겠다』 『아는 직원한테 돌려 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는 것.
소비자보호원에는 최근 부업이나 취업알선을 미끼로 회원가입을 유도한 뒤 각종 자격시험의 교재만을 팔고 사무실을 옮겨 버리는 교재판매회사에 사기를 당한 피해사례도 매달 30여건이 접수되고 있다.
소보원 피해구제팀 黃眞子(황진자·32·여)과장은 『이들 전화판촉업체는 일시에 돈을 받기 위해 신용카드로 결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업체는 구두약속을 해놓고도 언제 그랬느냐고 말하거나 해약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거래를 할 때는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金靜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