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대자보도 「실명제」…학번-호출기번호 기재

  • 입력 1996년 12월 1일 20시 03분


대학가에 「신세대식 대자보」가 유행하고 있다. 신세대식 대자보의 가장 큰 특징은 검은 매직펜 글씨 대신 컬러잉크와 인쇄글자로 대자보를 만든다는 것. 시위 때면 손에 매직잉크가 묻은 학생이 운동권으로 간주돼 연행됐다는 얘기는 이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우스개가 됐다. 학생들 사이에 컴퓨터와 컬러프린터가 널리 보급됐기 때문. 학생들은 『매직으로 쓰면 진지하고 생생한 느낌은 있지만 글씨 잘쓰는 학생들만 혹사당하기 쉽다』는 이유도 제시한다. 최근에는 컴퓨터 글자의 단순함을 보완하기 위해 「제목은 붓글씨, 내용은 워드프로세서」로 편집하는 절충형도 유행중이다.유행중인 「대자보실명제」도 신세대 대학생들의 작품. 지난달 29일 서울대 도서관 매점 벽에는 지난주에 치러진 학생회장 선거분위기를 비판하는 수학교육과 학생 6명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대자보에는 모두 학번이 적혀있다. 도서관 계단벽에는 호출번호를 남긴 「한 고시생」의 대자보가 지난주부터 걸려 있다. 「대자보실명제」는 급격하게 확산돼 이제 운동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대자보에도 자신의 학번이나 호출번호를 밝히는 게 불문율이 됐을 정도. 실명제는 상대가 누구든 토론에 응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막판에는 「6열람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고시생」이 당선가능성이 높았던 민중민주(PD)계열의 후보에게 「학내복지 개선 공약이 없다」는 내용의 대자보로 맹공을 퍼부었다. 운동권 학생들의 대자보 독점도 한물간 세태. 일반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도서관 은둔파」인 고시생들까지 워드프로세서로 친 A4용지 크기의 「소자보」를 내다붙이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학생회가 내건 대자보의 의견란마다 고시생들의 소자보가 한두개씩은 붙어있다. 〈李澈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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