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환경정책 원칙이 없다

  • 입력 1996년 12월 2일 19시 59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의 환경정책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시화호와 여천공단 오염사건은 삶의 터전을 훼손시킨 대표적인 예다. 그밖에 무분별한 간척사업으로 인한 귀중한 갯벌의 파괴나 전국 각지 쓰레기 위생매립지의 오염침출수 배출도 심각하다. 나아가 골프장 개발이나 국제 스포츠행사 준비, 양수발전소 공사 등으로 환경보전의 최후보루인 국립공원마저 훼손되고 있다. 80년대 세계적으로 지구환경 보전이라는 이슈가 심각하게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ESSD)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근의 시행착오 사례들이 대부분 「한국식 ESSD」 사업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25년 동안 유지돼왔던 정책이다. 그런데 현정부 들어 거듭된 선심행정으로 그 존립의 본질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 정치권은 내년 대선을 의식해 그린벨트 정책에 또다시 「한국식 ESSD」 개념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동안 도시의 녹지나 그린벨트를 민간이 개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공공기관에는 치외법권지대가 된지 오래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산기슭이나 구릉지 등 기업보유 토지의 개발을 녹지보호라는 취지로 불허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도심내 울창한 녹지를 없애고 으리으리하게 들어선 검찰청 법원 등 공공시설을 감안한다면 설득력이 약하다. 물론 지금까지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던 원주민들에게 제한적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린벨트에 대규모 경기장은 물론 유통 판매 금융 숙박시설까지 허용하려는데는 할 말이 없다. 정책입안자들이 개발제한구역을 개발유보구역으로 착각하거나 도시계획상 상업지역과 혼동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제발 민원에 떠밀려 야금야금 풀어주다 결국 그린벨트 정책에 실패한 일본의 전례를 따르지는 말자. 국토정책에는 친환경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도시 녹지나 그린벨트는 철저히 보호돼야 하고 가능하다면 보다 확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원칙도 없이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이끌리는 듯한 국토환경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은 물론 후손의 권리마저 희생시킬 뿐이다. 금 기 용(쌍용경제연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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