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봉특파원=中동북 3省을 가다」
연변자치주 용정시 외곽 농촌마을에 사는 李龍哲(이용철·37)씨는 사기꾼에 떼인 1만5천원(元·한화 1백50만원)의 빚때문에 집과 가재도구는 물론 지난 가을 추수한 벼 1천5백㎏과 콩 옥수수 등 양식마저 몽땅 빚쟁이한테 빼앗겼다.
방한칸짜리 초가에서 부인과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매서운 추위와 끼니걱정으로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조선족사기사건의 해결책과 관련, 우선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부터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협회의 공상일 비서장은 『한국정부든 민간단체든 빠른 시일내에 생존자금을 지원해 피해자들을 살려내야 한다』며 긴급대책마련을 호소했다.
긴급구호대책은 물론 이번 사기사건의 원만한 해결에는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생각이다. 사기꾼을 붙잡아 처벌한다 해도 이들이 떼먹은 돈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지 않는 한 원상회복이 힘들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피해자들은 사기꾼들이 제시한 초청장 등에 찍힌 한국관련기관의 도장 때문에 사기당한만큼 당연히 한국정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의 성경산업 李宗魯(이종로)사장으로부터 한국에 초청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38명의 돈을 모아줬던 張禹石(장우석·50)씨는 『한국정부의 비자까지 받아놓고 정책이 바뀌는 바람에 한국에 못나갔다』며 「정부책임론」을 폈다. 장씨에 의하면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의 도장이 찍힌 비자로 지난해말 6명이 한국에 갔으나 나머지 32명에게는 비자사본까지 팩스가 왔으나 이후 『정부방침이 바뀌었다』며 비자원본이 끝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제에 산업연수제도를 비롯한 조선족동포의 한국취업절차를 전면 개선해 달라는 요구도 많다. 조선족의 합법적인 한국취업기회를 넓히지 않는 한 유사한 사기사건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며 위장결혼 밀입국 등 불법적인 한국행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연길의 사기피해자 崔今子(최금자·44)씨는 『산업연수자격이 35세 이하이고 친척방문은 55세 이상에게만 허용되고 있어 요건이 안맞는 중년층이 위장결혼과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며 『한국행 기회가 골고루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배상과 사기꾼처벌, 한국행 기회부여 등으로 요약되는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 북경 한국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가 중국국적인 조선족이어서 한국정부가 나서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배상을 하고 사기꾼을 처벌하는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 실효성있고 종합적인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또 韓中(한중)양국의 긴밀한 협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기피해를 본 조선족이나 한국대사관측은 한결같이 사기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후유증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이 한국에서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한층 높아진 피해자들의 기대감을 어떤 방식으로든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형식과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한국과 조선족사회의 건설적인 관계정립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인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