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李明宰·韓正珍기자」 「아가동산」은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다. 10만여평 규모의 동산 곳곳마다 金己順(김기순·56)교주의 「일인독재」 흔적이 짙게 배어 있었다.
꼬불꼬불한 도로를 타고 가다 「아가동산」이라는 돌비석을 지나자 10만5천평의 광활한 규모의 터가 나타났다.
길을 안내한 한 교인은 안에 들어가면 『광신도들에게 보복폭행을 당한다』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정문 앞에서 차를 내려 되돌아갔다.
수만평의 논밭과 10여개의 유리하우스 레코드공장 및 26개동의 건물이 넓은 벌판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곳에는 최근까지 45세대 1백45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일」이 터지자 대부분 교인들은 이곳을 떠나버려 수십명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
아가동산의 한 가운데에는 교주 김씨가 거주하는 신관건물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자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 10여명이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교주는 어디로 갔느냐』 『여기는 언제 들어왔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왜 추운데 방문을 열어놓고 다니느냐』며 볼멘 소리만 낼 뿐이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교주 김씨의 침실과 거실이 나타났다. 「밖」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20여평 가량 되는 넓은 방은 일급호텔을 연상케 했다. 온돌침대와 자개장에 마란츠 등 스피커만 5천만원인 오디오세트, 일본 미쓰비시 대형 텔레비전 등. 장롱 서랍속에는 구두 백화점 상품권 수백장이 다발째 보였고 교인들로부터 헌납받은 것으로 보이는 통장도 서너개 발견됐다.
방 한쪽 장식장안에는 외국의 유명 양주가 빽빽이 차 있었다. 김교주는 평소 일반교인들에게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5,6세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이 아이가 바로 교인들이 숭배하는 「아가야」라는 것.
교인들은 일요일이면 밤 8시부터 신관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시간에 김씨는 『천당에 가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의 욕구를 참아야 한다』며 일을 열심히 하고 금욕하라고 설교했다.
성경 구절과 찬송가 가사는 모두 「예수」가 들어가는 부분을 「아가야」로 바꿔 불렀다.
「아가동산」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현재 이곳에는 아가가 없다. 최연소자가 중학교 3학년생이다. 한 교인은 『교주가 부부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해 일단 여기에 들어온 후부터는 아이를 낳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