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의 세상읽기]불쌍한 아버지?

  • 입력 1996년 12월 16일 19시 56분


며칠 전 잘 아는 친구가 아버지가 되었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독일 속담을 빌려 「아버지 되기는 쉽지만 아버지 노릇 하기는 어려우니 잘하라」는 사뭇 상식적인 충고로 축하를 대신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제대로 아버지 노릇 잘하고 있나 돌이켜 보았다. 그러다가 직업은 어쩔 수 없는지 개인적인 반성으로 끝내지 못하고 요즘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아버지를 다룬 소설책에 생각이 미쳤다. 누군가 일찍이 아버지 없는 사회라고 일렀던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또 받들어지던 권위나 가치는 무너진지 오래인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들의 존재는 일그러지고 부서진 상처뿐인 모습인 것은 사실이다. 워낙 빨리 그것도 정신없이 변해버린 삶터, 특히 가족에서 아버지는 예전의 「어험」하던 자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자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이다. 이 책은 내가 읽기로는 이렇게 자리잃고 헤매는 「불쌍한」 아버지의 「자기연민」에 가득찬 이야기다. 실제로 불쌍하기도 하고 아버지들을 그렇게 만든 세상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 자신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속한 사회, 가족을 그렇게 야속하고 인정머리 없게 만든 것은 또한, 아니 전적으로 아버지들 스스로의 책임이다. 또 그나마 고통 끝에 위안이나 보답을 얻는 것도 여전히 아버지들만의 특권이다. 같은 처지라면 어느 어머니가 그런 위안이나 보답을 받겠는가. 게다가 힘들고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 알아주지 못한다고 투정하는 불쌍한 자기연민은 자칫하면 그나마 흔들리는 부모자식 관계의 새로운 모색을 그르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다. 아무튼 자신들의 초라한 이유를 남에게만 전가해서는 아버지의 새로운 자리를 찾을 수 없다. 결국 아버지의 자리는 그것이 가족에서든 사회에서든 달라진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앞날을 내다보는 심사숙고를 통해서 새롭게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아버지들 자신이 자기연민이나 책임전가 말고 스스로를 제대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 스스로 불쌍히 여길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떨쳐 일어서 새 아버지의 자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정 유 성〈서강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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