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우리 가족을 두번 죽이려는지…. 이 추운 날 집을 내놓으라니. 우리는 어쩌면 좋겠소』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실종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벙어리아들」을 지난해 12월 16년7개월만에 극적으로 찾았던 金忠煥(김충환·52·광주 북구 운암동) 金六禮(김육례·46)씨 부부(본보 96년12월11일자 39면보도)는 요즘 온 식구가 거리로 나앉게 될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벙어리아들의 행방불명 보상금으로 지급했던 1억2천여만원을 이제 도로 내놓으라는 통보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애 아빠는 또 다시 맨날 술만 마시기 시작했고 그나마 잘 다니던 직장까지 때려 치웠지라. 허구한 날 우리집에는 왜 이렇게 근심거리만 생기는지 몰러. 아들을 찾아 이제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혔는디…』
김육례씨는 남편 김충환씨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쉰다.
지난해 12월8일 김씨부부는 「생애 최고의 기쁨」을 맛보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80년5월19일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잃어버린 뒤 죽은줄로만 알았던 아들 俊成(준성·25)씨를 다시 찾은 것이다. 전남 장흥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김씨는 당시 9세된 벙어리 아들 준성군을 특수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광주로 갔다가 마침 전남도청 앞에서 벌어진 「광주사태」의 시위와중에서 아들을 잃어 버렸었다.
그러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은 잠시였다. 지난 10일경 김씨부부에게 광주시장의 직인이 찍힌 한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행방불명으로 처리됐던 아들의 생존사실이 확인됐으니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2항에 의해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과 이자 등 1억2천4백여만원을 이달 말일까지 내놓으라」는 내용의 통보서였다. 이 통보서는 「보상금을 도로 내놓지 않으면 지난해 12월14일자로 가압류한 김씨의 유일한 재산인 광주 북구 운암동의 30여평 남짓한 집을 압수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어 지난주에는 「김씨 소유의 가옥에 대해 이미 압류를 설정했다」는 내용의 통보서가 날아들었다.
『이 엄동설한에 준성이 동생들 6명을 데리고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아들을 찾았으니 아들에 대한 보상금으로 장만했던 집을 도로 내놓는 것이 도리겠지만 어떻게 갈 곳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매정하게 하는지 모르겠어라』
이에 대해 광주시청 5.18지원협력관실의 한 관계자는 『김씨부부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봤지만 공무원으로서 법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다』는 말 뿐이다. 한편 서울지방변호사회 安相云(안상운)변호사는 『현행 법률상으로는 사건이 있은 후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김씨 가족이 그동안 받은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며 『사망자 부상자 행방불명자만을 보상의 대상으로 한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정신적인 피해도 보상하는 등 완전보상이 이루어지도록 바꿔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동안 우리가족이 아들을 찾기 위해 팔아버린 고향의 논밭은 고사하고 말 못하는 우리 준성이가 16년이상 당해야 했던 수모와 고생은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단 말이오. 그나마 보상금으로 장만한 이 집마저 당장 내놓으라니…』
가난한 김씨부부에게는 벙어리아들을 잃어버렸던 80년의 「그 살벌했던 때」나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금이나 딱한 사정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기는 마찬가지다.
〈金載昊기자〉